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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스텔 Nov 27. 2021

팩폭을 멈춰주세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직준비생의 처절한 자기 고백 (2) KO에 또 KO패

거듭된 연전연패. 오늘은 회사에 진 건 아니고, 스스로의 멘탈과 주변의 시선에 무릎을 꿇었다. 사실 후자는 내 스스로 만든 구덩이에 알아서 빠진 거라 남 탓할 일도 아니지만, 지금 나는 멘탈이 바스러진 상태이기 때문에 괜히 핑곗거리를 하나 찾고 싶었다.


어제 처절한 이직준비생의 일기를 올린 이후 하루 종일 잤다. 밥도 한 끼만 먹었다. 점심만 대충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계속 수마에 빠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싫었던 걸지도. 현실도피라는 말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행위를 할 줄이야. 예전에는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 '나약하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는데 이래서 사람은 역지사지를 해봐야 한다.


24시간을 내리 굶으면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니까 오후 12시쯤 배가 고팠다. 배민을 열어서 대충 허기만 잠재울 머핀과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서 세븐틴 온라인 콘서트를 봤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래도 이런 작은 행복이라도 주입해야 정신적 허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븐틴 팬덤 캐럿이다.)


어제 친한 동생이 보낸 '누나 멘탈이 강하진 않네요' 라는 카톡에 1 넉다운.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진 2 공격은 엄마의 팩폭이었다. "너는 33 먹고도 지가 뭐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회사 합격을 바라냐? 요행만 바라는  퍽이나 합격하겠다" 점심 먹다가 어떤 수비태세도 갖추지 못한  맞닥뜨린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KO 당한 사람을 또 때리는 건 반칙 아닌가요?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내용을 타인의 입으로 듣는 건 늘 기분이 나쁘다.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더. 구질구질하고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잠이 쏟아졌다. 잠만 자는 데도 버거웠다. 잠을 자면서도 이게 잠을 자는 건지 억지로 도피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들 눈에는 '고작 회사 하나 떨어지고 유난'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누구나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입장이 되면 유난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여하튼 엄마의 눈에는 되는 대로 자격증이나 몇 개 따서 대충 끼적이고, 이름 있는 회사에 지원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누구보다 난 그 회사가 절실했고, 무엇보다 입사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물론 회사의 이름값도 무시할 순 없었지만.


내 안의 불씨가 유일하게 살아난 일이었다. 나일롱 법대생으로, 학점도 개판(전공이 나랑 안 맞았다고 항변하고 싶다)에 겨우겨우 그중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했던 게임 관련 일을 때려치우고, 어거지로 들어간 회사에서 숨만 쉬면서 3년을 보낸 끝에 찾은 적성이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내내 만약 법학과가 아니라 경제학과를 갔으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 건.. 다소 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래도 회사 갔다 와서 울면서도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1년 새 3개나 딸 수 있었던 건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AFPK와 투자자산운용사, 펀드투자대행인을 땄다.)


물론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버렸고, 2순위인 투자 관련 에디터를 하고 싶었다. 기회가 왔으나 아쉽게 또 버스를 놓친 사람이 됐다. 티켓까지는 어떻게 손에 넣었는데 그 티켓의 출발 날짜가 맞지 않았던 모양.


대체로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내게도 이번 일은 큰 타격이다. 대충 웃으면서 떨어졌으면 다음 일을 찾아보자며 훌훌 털어내는 일이 쉽지 않네. 그래도 결국 승자는 내가 되리라 생각하며, 정신을 차려보는 오후 3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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