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은 빨리빨리, 회사에선 느긋느긋. 그렇지만 이중인격은 아니에요.
중간 관리자가 된 이후 계속 떠올리는 것이 바로 '기다림'.
지금까지 깨달음 주는 상사들을 꽤 만났다. 어떤 이는 능력치가 월등했고, 어떤 이는 내 취향을 넓혀줬고, 어떤 이는 인성이 너무 좋았고, 어떤 이는 글쓰기 능력을 키워줬고, 어떤 이는 날 많이 챙겼고. 공통점이 있다면 내게 시간을 줬던 이들이다.
사회초년생인 나를 적어도 사람으로 만들어준 팀장님(그땐 기자였으니까 정확하게는 편집장님)은 연차 이상의 기회를 주셨다. 나를 옆에 앉혀놓고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쳐주셨고. 고작 한 달 차인 나에게 인터뷰 기회도, 현장 취재 경험도 쌓게 해주셨지. 글쓰기의 기본도 모르는 코찔찔이 나에게 일단 해보라며 독려하고 기다려주신 점에 대해 여전히 감사하다.
뒤이어 만난 팀장님은 진정한 기다림의 고수. 뭐 할래? 그 기사 쓸래? 그럼 그거 써보자. 하고 완성될 때까지 독촉하지 않았다. 대신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던 날 간파해서 주기적으로 방향성을 고쳐주셨을 뿐.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지만.
플랫하기 짝이 없던 내 취향을 대각선으로 넓혀준 리드도 생각난다. 내가 나만의 향, 색을 발견할 때까지,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업으로 전환하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줬는데, 자신의 경험을 나에게 나눠주고, 또 그걸 내가 체화하기까지 옆에서 그저 바라만 봐준 고마운 분.
이제 7~8년차가 되고 보니 회사에서 기다림이 가장 어렵다는 걸 느낀다. 특히 아랫사람이 천방지축 이리저리 튀고 저리 튀면서 사고 칠 때 '그냥 내가 하고 끝내?'라는 생각을 100번쯤 하는데 101번쯤 다시 고쳐먹는다.
내 기조는 큰 틀에서의 방향성만 잡아준다는 것. 물론 내가 다 할 수도 있지만, 일단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사실 내가 해버리는 게 제일 속 편하다.) 그래야 아랫사람도 성장하고, 경험치가 쌓인다. (물론 멀쩡하고, 적당히 일머리가 있다는 가정하에)
얼마 전 다시 떠올려도 기분 좋은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절 기다려주셨어요? 새로 온 사람만 보면 전 정말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함께 일했어서 너무 좋았어요'. 무엇보다 내 진심이 통했던 것 같고, 또 이 친구가 자기가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걸 내게 말해줘서 가장 기뻤다. 사실 내 마음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제일 많고, 알더라도 연락을 따로 하는 일은 드문데 말이지. (난 사실 안 했던 것 같음 늘 죄송합니다..)
지금껏 회사 생활은 대체로 운이 좋았다. 나도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이 날 만나서, 아주 나중에라도 같이 일하게 되어 운이 좋았다고 한 번쯤 떠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진짜 그냥 이 인간 한 대 치고 빵 가? 이런 적도 있었지. 근데 그 시절을 겪었으니 또 좋은 상사에 대한 기준점이 생긴 것 같아서 더 언급하진 않으련다... 절레절레. 근데 님 계속 그렇게 살면 밤길 조심해야 함. 진짜 조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