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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Nov 28. 2023

3년의 시간, 창밖의 추억

2023년 부산중구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1994년 초, 기분이 몹시 안 좋은 날이 있었다. 고등학교 배정을 받은 날이었는데, 부산은 평준화 지역이다. 그저 운에 맡기고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배정 결과는 가장 원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적어낸 3지망 혜광 고등학교였다.  


그 날, 혜광 고등학교 근처에 살던 친구와 같이, 골목길을 올라, 학교 앞까지 가 보았다. 기가 막혔다. 산 전체에 다닥다닥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좁고,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서 한참을 올라가야만 했다. 3년 동안 여길 지나서 등교하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친구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혜광 고등학교도 괜찮다. 농구장도 여러 개 있어서, 이제부터 농구 열심히 하면 된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혜광 고등학교는 운동장이 좁아, 축구는 정말 어거지로 할 수 있다. 정식 축구장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에, 그나마도 직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의 축구장이 있다. 농구를 열심히 하면 된다. 당시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친구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어렵게 다른 장점을 이야기 했다.  


“여기 교실에서 내다보면, 아마 바다도 보이고, 시내도 다 보일 거야.”  


솔직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고등학교 3년은 의외로 아주 괜찮았다. 환경이 열악했지만, 곧 적응했고, 뭘 해도 즐거울 나이라 그런지 지금 생각해 보면, 좋았던 기억밖에 안 난다.  


 운동장이나 교실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면, 정말로 바다가 한 눈에 다 보이고, 보수동, 중앙동, 대청동, 영도까지 다 보였다. 공부하기 싫을 때, 멍하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배 한 척을 보면서, 나만의 항해를 상상 속으로 해 본 것이 기억이 난다. 정말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은빛 물살이 살아 움직이듯 반짝반짝 거리고, 넓은 바다 위에 적막감만이 감도는 그 곳, 어쩌다 수평선을 향해 출항하는 배 한 척을 보게 되면, 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고, 바다 위 마도로스가 된 듯, 한껏 바다와 하늘을 번갈아 살피며, 부질없는 상념에 사로잡히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여기서 보는 바다 풍경은 정말로 그리워하게 되겠구나.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바다 외에도 여러 가지 볼 만한 것들이 많았지만, 항상 내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용두산 공원탑과 부산 대교였다. 지금은 부산타워라고도 부르는데, 그 당시에는 다들 용두산 공원탑이라고 불렀다. 별다르게 멋있는 탑도 아니었고, 엄청 높거나, 예뻤던 것도 아니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게 보였다. 학교에서 내려다 볼 때는 그냥 가느다란 흰색 기둥 위에 유리창이 있는 조그만 원두막 같은 것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초등학교 입학 이후 용두산 공원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취학 전, 외할머니와 함께, 자주 올라오던 곳이었다. 유치원 때도 너무 자주 이곳으로 소풍을 와서 질렸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꽃시계, 비둘기, 부산타워 등, 사실 초등학생 이후에는 관심을 끌 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꾸 옛날 추억이 생각나서, 언젠가 대학 입학하게 되면 꼭 저길 가 봐야지. 하면서, 그 날을 손꼽아 세 보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냥 딴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용두산 공원은 추억이라도 있지, 부산대교는 아예 가 본적이 없었다. 부산에 살면서 영도에 갈 일이 없기는 하다.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영도에 사는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우리는 항상 섬사람들이라고 놀리곤 했다.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그 위를 바삐 오가는 차량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처럼 나도 섬에서 육지를 오가는 것 같이, 부산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곳 사람도 저곳 사람도 아닌 왔다 갔다 하는 정체성 모호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한 것 같다. 부산은 사실 취업하기 좋은 도시가 아니다. 대기업이라고 해 봐야, 중공업 업체 몇 곳과 르노 삼성, 삼성전기 정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업계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을 통해서 이러한 부산의 상황을 많이 들었기에, 막연하게 나도 부산을 떠날 날을 마음속으로 준비했었던 것 같다.  


세월이 지나, 취업을 하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고등학생 때 봤던 창 밖 풍경을 볼 수 없었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내 고향 부산, 이렇게 생각하면 학창시절 창가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그 시절을 그립게 하는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마음대로 꿈을 펼치던 마지막 시절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창가에 앉아있던 시간은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었다. 용두산 공원탑이 등대 같다고 줄곧 느꼈었다. 출발지와 도착지의 위치만을 알려줄 뿐, 항로를 가르쳐 주지는 않는 등대. 내가 원하는 꿈을 하나하나 바다에 띄워놓고,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만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후 현실은 항상 실력이 부족해서, 어느 정도 타협하는 삶을 살았기에, 어쩌면 내 삶은 파도에 흔들려서 항로를 바꿔야만 하는 작은 고깃배 같은 인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부지런히 부산대교 위를 지나다니는 화물차들처럼, 왔다 갔다 하는 그저 바쁜 삶인지도 모르겠다. 마음먹었던 일을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다시, 몇 번을 반복해서 도전했었으니까.  


올해 봄, 부산 고향집에 도착해서, 혜광 고등학교 쪽을 올려다보니, 교정 아래로 개나리가 피어있고, 산복도로 길에 벚꽃이 피어있었다. 저 길 너머 학교 창가에서, 내려다 본 광경이 그저 그리울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두고두고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 비탈에 심겨져 있는 개나리꽃, 아주 옛날 혜광고의 한 선생님이 학교를 좀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심은 것들이라고 한다. 학교를 떠나시며, 개나리꽃이 피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셨다는데, 잠시 근무하던 곳에 어떤 마음으로, 본인의 흔적을 이렇게 아름답게 남기려고 하셨던 걸까?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바다를 소금기 가득한 물로, 하늘을 공허한 대기로, 탑을 탑으로, 다리를 다리로만 보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내가 내려다 본 중구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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