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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n 08. 2024

하필이면 왜 시집살이 노래

시집살이 이야기와 시집살이 노래 그리고 혐오

                                                                                                                                                                                                                                                                                                                                                                

시집살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명절 때는 더욱 무성해진다. 남 집 제사상 더 이상 차리기 싫다는 푸념, 시댁 친정 공평하게 방문해야 한다는 아우성... 시집살이에 관한 이야기는 넘쳐난다. 한때 웹툰,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주제로 시집살이이야기는 핫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과 초연결 시대에도 시집살이이야기는 진행 중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원작, 소설 <82년생> 김지영도 시집살이 이야기를 다룬다. 결혼한 지 3년 된 김지영은 평범한 대한민국의 여성이다. 소설은 김지영에게 나타난 ‘빙의하여 말하기’로 시작한다.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일은 터진다. 김지영에게 친정어머니가 빙의하여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라고 말한다. 


소설은 두세 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감 있게 잘 읽히지만 읽고 난 후 남는 감정은 복잡하다. 내가 살아온 세상,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밋밋하지만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묘하고 복잡하게 감염되고 신체화된 의식의 실체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웹툰 <며느라기>도 미묘한 시집살이를 다룬다. 저자는 인테리어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카페에서 흥미로운 게시글이 오르는 게시판을 목격했다고 한다. 거기 며느리들의 하소연이 나열된 익명의 게시판에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단골 소재로 오르고 있었다. 그들 이야기에는 <올가미>나 <사랑과 전쟁>에서 나오는 극단적 사건은 아니지만 순간 타이밍을 놓치면 다시 그 일을 끄집어내기 어려운 미묘한 사연이 많았다. 많은 글의 제목이 “제가 예민가요?”라면 대답은 “예민한 거 아니다 “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소설이나 웹툰은 한국 사회가 근대화와 산업화, 정보화 사회를 거치면서도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인 가족제도에 서식하며 경계에서 갈등하는 관습화된 의식을 고발한다. 시집살이 노래도 비슷하다. 조선 후기에 발생하여 구연되고 전승된 시집살이 노래는 부당한 차별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야 했던 어린 며느리의 노래다. 시집살이 노래는 유교적 가족주의를 배경으로 고착화된 부계혈연조직 중심의 가족제가 정착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남귀여가혼에서 친영제로 전환된 혼인제도와 장자 중심의 종법제 만들어낸 조선의 가족제도는 어린 나이에 낯선 곳으로 시집을 가야 했던 여성을 자연스럽게 차별하고 억압하게 만들었다. 낯선 집으로 시집온 나이 어린 여성은 이중 삼중으로 타자이자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여성이라는 점, 나이가 어리다는 점 등등 당시 사회구조 안에서 이중 삼중의 불리한 조건으로 갑자기 내몰리게 되었고(양반가 여성이냐 평민여성이냐 역시 고려되어야 할 조건이다) 그런 시절을 살면서 남몰래 부르던 노래가 시집살이 노래였다.


시집살이 노래에 대한 초기 연구는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순응하고 살아낸 인고와 한스러움에 주목했지만 2세대, 3세대 연구자들은 이 노래를 가부장제의 억압과 차별에 저항한 일면에 주목했다. 이 분야의 선구적 방법론을 도입한 조동일은 <서사민요연구>를 통해 서사민요가 여성 주체적 시각을 담은 노래로서 봉건적 남성 지배질서에 대한 항거와 비판을 담은 노래라는 점을 지적했고 서영숙은 조동일의 연구를 적극 계승하여 이를 체계화했다.


강진옥은 ‘여성적 말하기’라는 관점에서 여성적 태도와 인식을 기반으로 부당한 시집살이에 대해, 남편의 외도에 대해 침묵하거나 저항하면서 그 갈등을 고조시키거나 해결해 나간 점을 제시하며 여성적 말하기의 저항성을 주목했고 이정아 역시 억압되고 통제된 사회에서 약자로서의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원망, 하소연, 침묵, 비난, 분노, 비아냥 등의 다양한 말하기 방식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한편으로 순응하는 단일하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어지는 연구들 역시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 상에서 시집살이 노래를 다루고 해석했다. 


시집살이 노래는 강력한 가부장제의 가족제도 하에서 약자였던 여성/며느리가 불렀던 노래다. 노래는 여성의 개인적인 체험이면서 동시에 결혼한 여성이 공감하고 공유하는 ‘시집살이’의 경험을 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시집살이 노래는 다양한 유형을 지니고 있고 노랫말 유동적이며 개방적이다.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게 재연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말 중심의 노래다. 오늘날 노동이 사라진 현장에서도 시집살이 노래가 채록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이나 순응보다는 저항의 노래로서 문학사적 의의가 부각된 선행 논의의 해석은 타당하다. 어리고 발언권 없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탄식하고 저항하며 분노했던 노래는 자의식이 살아있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대한 항거이자 비판적인 의식을 수반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말들은 동시대의 다른 문예물(여성가사, 남성민요 등)과 차이를 보이면서 존재감을 갖는다. 


그런데 시집살이 노래는 과연 저항과 비판만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억울함을 토로하고 그 분함을 하소연하며 저항과 비판만을 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시집살이 노래는 생존을 위한 노래였고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속내를 대신한다. 창자의 경험이나 가치관에 따라 같은 유형의 노래일지라도 다른 감정과 태도를 실어 부를 수 있다. 


시집살이 노래는 2세대와 3세대 연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 온 프레임과는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그  틈과 경계에서 시집살이 노래를 해독해보고 싶다. 주체적 자각과 저항, 비판의 노래라고 일반화하기 전에 살아내기 위해 불렀던 생존의 노래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시집살이 노래는 유교적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시집가는 친영제가 보편화되면서 생겨난 노래라고 그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남귀여가혼의 전통에서 친영제로 전환되면서 남성의 집으로 시집간 여성들이 시집살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남성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과 감정 등이 노랫말을 이룬다고도 말했다. 


젠더무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여성 억압의 모든 원인을 가부장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말한 임옥희의 주장을 이 지점에서 꺼내본다. 여성해방운동에서 가부장제는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고 대가족을 포함한 가족관으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현상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며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지배의 원인으로 설명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성 억압을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오히려 젠더사회화 과정에서 자리하게 된 젠더무의식 안에 자리하는 일탈적 현상과 감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젠더무의식은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


시집살이 노래는 조선후기 부계 혈통 중심의 가족주의가 공고해지던 시기, 이 공동체에 속해야만 생존하면서 사회적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배경으로 읽어야 한다. 


이 시기에 던져진 존재로서 여성들은 부계 혈통사회가 자행하는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면서 자란다. 여성은 이러한 구조에서 다시 남성의 집으로 시집을 가는 이중적 억압의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층적인 구조의 차별과 억압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중층적 과정과 맥락이 젠더무의식에 관여하게 된다. 바로 그 무의식의 일부를 표면화한 것이 시집살이 노래일 수 있다. 모든 것이 추정이고 가정이지만 그러하다.


그 추정을 이어가자면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부계 가족의 규범을 내면화한 여성들, 그 가운데는 적극적인 동조자도 있을 것이고 침묵하는 동조자도 있었으며 그러한 의식조차도 없이 생존했던 이들도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시집살이 노래에는 혐오와 차별이 자연스럽게 서식하게 된다.


시집살이 노래는 명칭부터가 편향적이다. 며느리 시각을 완전하게 동조하는 노랫말이 대부분이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은 시집살이 현장에서 벌어졌던 그 사건들과 그로 인해 생겨난 감정들 예를 들자면 두려움, 불안, 공포, 분노와 슬픔 등이 주로 표현된다. 


시집살이 노래에서 혐오를 읽어내겠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노랫말에는 일상적으로 자행된 혐오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남성 편에 선 가족과의 대화에서 며느리에 대한 혐오는 일상이다. 노랫말은 여성혐오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신체화하기도 한다. 아직 가족이기를 유보한 어린 며느리를 구박하고 학대하고 차별하는 동시에 그 불합리한 억압의 구조나 상황을 내면화시 키디고 한다. 


여성은 가족의 일원이 되는 사회화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공모자가 된다. 모진 시집살이를 겪은 우리와 달리 요즘 것들은 편한 세상을 산다는 70-80대 여성들의 푸념에서도 그런 흔적은 얼마든지 목격된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겪어낸 세대가 말하는 며느리살이는 그런 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양육, 보살핌, 배려, 희생과 헌신과 같은 가족 내 윤리는 여성에게 여성혐오는 강력하게 내면화시킨다.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는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갈등하는 혐오의 시각이 교차하고 겹친다. 




참고자료


강진옥, 「서사민요에 나타나는 여성인물의 현실 대응양상과 그 의미:시집살이 애정갈등노래류의 ‘여성적 말하기’ 방식을 중심으로」, 구비문학연구 9, 한국구비문학회, 1999. 97-130면.

강진옥, 「여성 민요 화자의 존재양상과 창자집단의 향유의식」,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4,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5-32면.

강진옥, 「여성 민요와 여성생활현실의 관련양상」, 한국고전여성작가연구, 태학사. 1999.

서영숙, 「서사민요 <진주낭군>의 형성과 전승의 맥락」, 구비문학연구 49집, 한국구비문학회, 2018, 231-271면.

서영숙, 한국 서사민요의 씨실과 날실, 역락, 2010.

이정아, 시집살이 노래와 말하기의 욕망, 도서출판 혜안, 2011. 

이정아,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난 여성혐오와 그 의미, 우리 문학 60, 우리 문학회, 2018. 

임옥희, 「혐오발언, 혐오감, 타자로서 이웃」, 도시인문학연구 제8권 2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2016, 79-101면.

조동일, 서사민요연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70.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조계원 역, 민음사, 2015. 

우에노 지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나일동 역, 은행나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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