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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n 11. 2024

혐오는 약한 고리를 찾는다

시집살이 노래와 낙인효과  

성리학을 신봉했던 왕실과 사대부는 관습으로 정착한 남성이 여성의 집으로 장가가는 혼례의식을 바꾸고자 애썼다. 조선왕조실록은  왕가에서 친영제의 본을 보이는 일까지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관습은 힘이 셌다.  사임당이 자기 집에서 율곡을 양육했던 것도 바로 그런 관습에 기인한다. 양반가의 여성의 삶을 지배했던 이러한 구도는 조선 후기 달라진다. 소위 종법제라는 것이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아주는 만병통치약처럼 처방되면서 서서히 이런 관습은 평민 집에도 자리한다.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시집가는 친영제는 강력한 부계 혈통 중심의 가족주의를 공고히 했다. 가족 내에서도 남녀 간 위계나 나이 많은 자들과 어린 자가 지켜야 할 윤리의식이 강조되었고 그러한 법도(?)에 따라 차별과 혐오가 자행되었다. 이 구조 안에 취약한 자는 갖 시집온 며느리다. 새로 가족에 편입된 어린 며느리를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열다섯에 시접을오니/시접살이 살라하니

나안꺾은 석루야꽃도/날꺾었다꼬 탓이로세

나언건디린 제비새끼/날건디맀다 탓이로세

나안묵은 찰부낌이도/날묵었다꼬 탓이로세

무섭더라 무섭더라 시집아살이가 무섭더라



하늘겉이 높은 집에/암송담송 다섯건구

나할날사 넘이라고/나안먹은 연자절편

날묵었다 하시더니/죽구지라 죽구지라

아앙루 깊은물에/아야퐁당 죽고지라

사랑앞에 화초대는/시누애기 꺽었는걸

날꺽었다 하시더니/아양루 깊은 물에

아야퐁당 죽고지라/오늘밤 오경시에

징검이불 피어놓고/자는 듯이 죽어볼까

석자수건 목에매어/자는 듯이 죽고나니

비게넘에 스이지고/이불밑에 강이졌네

삼일장사 치루올제/서방님은 불건하고

자일이기 요령소리/아련키도 울어나나

넘듣기는 좋컨마는/내신세가 가이없네



첫 번째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집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범인(?)로 며느리가 지목된다는 점이다. 일방적인 모함이라고 억울해하지만 누구도 듣지 않는다. 꺽지 않은 석류꽃도 꺾었다고 하고, 만지지도 않은 제비 만졌다고 모함한다. 입도 대지 않은 찰부꾸미까지 먹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혐오의 전형적 상황이다.


두 번째 노래도 ‘먹지도 않은 연자절편을 먹었다고 누명 씌운다’고 며느리는 노래한다. ‘아앙루 깊은 물에 죽고 싶다’, ‘꺽지도 않은 화초대를 꺾었다’ 고 하니 ‘징검 이불 피어놓고 죽어버릴까’라고까지 말하는 며느리의 목소리는 그저 탄식에 머물고 만다.


두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가족 내 모든 사건 사고는 며느리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불미한 사건은 며느리가 일으킨 것이다.  며느리 몰아가기다. 며느리 낙인효과다.


부계 혈통 중심의 가족주의가 혼란해진 사회를 다잡는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이런 부당한 일들이 가족공동체 내에서는 당연하게 자행되었다. 궁핍했던 경제적 상황까지 연계해서 노랫말이 전하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낯선 자에 대한 경계, 불평등한 위계적 서열화와 가난, 배고픔과 같은 결핍은 분노의 대상을 필요로 하기 충분한 조건이 된다. 이때 공동체의 분노는 가장 약한 고리를 향하게 된다.


며느리는 마녀사냥의 대상이다. 사회 경제적인 상황과 궁핍함이 가져왔을 환경에서 낯선 이방인이었던 며느리에게 향했을 분노와 혐오는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동성애자나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혐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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