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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16.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앞모습은 아우라, 뒷모습은 도마 위

 저기 횡단보도 앞. 단체로 어디라도 가는 것일까? 키가 고만고만한 일곱 명의 여학생들이 각자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가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 그리고 바로 뒤편 카페 안에도 적게는 2명, 많게는 6명, 그 이상의 남녀가 테이블 주변으로 빙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이내 파란불이 켜지고……. 부랴부랴 길을 건너 골목 안 모퉁이를 지나는데 저만치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한정식집이 보인다. 그런데 학부모 모임이라도 있는 것일까? 제법 잘 차려입은 엄마들이 앞 다투어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만남의 모습들을 보면 참 다양하다. 어떤 이는 상대방 하는 말을 그냥 조용히 듣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손짓, 발짓 온갖 제스처를 취하면서 열변을 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마치 주변을 탐색이라도 하듯 두리번거리면서 중간중간 대화에 끼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마치 눈으로 대화하듯 그냥 조용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기도 한다. 게다가 단체 모임에 가보면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얘기하는 사람 따로, 듣는 사람 따로다. 그러니까 앞에서 주도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나 몰라라!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그들만의 리그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직장 내 사람들, 거래처 사람들, 같은 반 학부모, 동아리 소속 멤버들, 가족들, 지인들, 친구 등등 때론 공적으로, 때론 사적으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물론 만남의 횟수가 너무 적으면 당연히 상대방을 파악할 수 없겠지만 주기적으로든 잦은 만남을 통해서 상대방을 알아가게 되고 또한 상대방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체에서 느껴졌던 상대방의 모습과 단체 속의 개인에서 느껴졌던 상대방의 모습이 180도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우리 옛 속담이 바로 이런 경우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엄마들 모임에는 그 지인이 중심에 서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워낙 품위도 있는 데다가 정보력, 지식, 말주변, 자녀 교육까지 흠잡을 때가 없어서인지 대부분의 엄마들은 매번 그 지인의 아우라에 압도당하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누구 한 사람 그 지인을 무시하지 않았고, 그 지인이 하는 말에는 귀를 쫑긋 세우고, 전부 귀담아듣곤 했다. 게다가 모든 엄마들의 시선이 다 그 지인에게로만 향하고 있었기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딴 곳을 바라볼 경우, 왠지 그 모임에서 소외당할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아이고! 요즘 우리 아이는 사춘기 때문인지 말도 안 듣고, 공부하고는 아예 담을 쌓았나 봐요.”

 “말도 마세요. 우리 아이는 앉아서 게임만 하다 보니 살이 얼마나 쪘는지……. 기존의 입었던 옷들이 글쎄 하나도 안 맞지 뭐예요.”

 “우리 아이는 요즘 시대에 대학을 굳이 가야 하냐며 아빠한테 막 따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대학 가지 말라고 했죠. 그나저나 00이 엄마는 좋겠어요. 아이가 워낙 모범생이라서.”

 “음.. 우리 00이는 지금껏 나나 아빠한테 거의 대든 적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굳이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하니까 딱히 잔소리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고요.

 “이야! 그러니까 00이는 자기 주도 학습이 되는 거잖아요.”

 “아이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키기에 그런 건가요?”

 “글쎄요. 딱히 뭘 하는 것도 없는데.”   

 “에이! 그래도 엄마만의 노하우가 있으니까 아이가 저렇게 잘 자랐을 것 아니에요.”

 “우리 아이도 그냥 보통 아이들과 똑같아요."

 “보통 아이가 그 정도면 못 하는 아이는 도대체 어쩌라고요.”

 “……,”


 매번 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엄마들의 시선은 그 지인한테로만 향하곤 했다. 워낙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다 보니 그 어떠한 질문이 나와도 근거를 토대로 정확하게 얘기를 해줬고, 여행, 교육, 살림, 재테크, 부동산 등 그야말로 모든 분야를 다 아우르고 있을 정도로 완벽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그 지인의 아이는 엄마들 사이에서 모범생으로 이미 입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그 지인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예를 들어 어떠한 의견이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그 지인의 의견에 따르는 식이었다.


 왠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 지인 한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느낌이라고 할까! 난 어느 순간부터 그 모임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서서히 모임 횟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가끔 얼굴을 비출 때면 나도 모르게 소외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렇다고 마음에 썩 내키지도 않는데 굳이 즐거운 척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임에 뜸해질 무렵, 그 모임의 멤버들과 개인적으로 만날 일들이 자꾸만 생겨났다.


 한 번은 모임 멤버들 가운데 한 엄마가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간단히 브런치나 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개인적인 만남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고, 이후 약속 시간에 맞춰 그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부드러운 우유가 가미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먹음직스러운 에그 샌드위치 그리고 신선한 과일 야채샐러드……. 그렇게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과 함께 우리들의 수다는 점점 더 무르익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엄마가 조심스레 그 지인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숨이 막힌다고.


 그리고 며칠 후, 마트에 갔다가 모임 멤버들 가운데 또 다른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는 나에게 왜 모임에 자주 안 나오냐며 잠깐 얘기 좀 나누자고 했다. 그래서 근처 카페에 들어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데, 그 엄마 역시 그 지인에 대해서 한 마디 쏘아붙였다. 이상하게도 그 지인만 만나고 나면 기분이 안 좋아진대나 어쨌대나. 여하튼 이후에도 몇몇 모임 멤버들을 개별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지인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엄마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끼는 게 거의 비슷했다. 내가 그 모임을 통해 느꼈던 부분을 다른 엄마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다만, 난 그 모임의 무의미함을 견디지 못해 일찌감치 선을 그었던 것이고, 다른 엄마들은 그냥 지켜보거나 그 지인의 벽함만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만남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공감도 필요하고, 또 위로와 위안을 얻는 등 무언가가 채워질 때 비로소 좋은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임은 완벽한 주인공과 다수의 엑스트라와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엄마들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 상실로 인해 소외감을 느수밖에.


 그 지인은 지금껏 상대방에게 자신의 결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직 완벽함만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완벽함에 끌리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숨이 막혀왔던 것이다. 사실 빈틈이라는 것도 때론 상대방에게 숨 쉴 수 있는 편안함을 주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여하튼 그 지인은 비록 앞모습은 남들이 다 부러워할 정도의 아우라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 뒷모습은 늘 주변 엄마들의 도마 위에 올랐던 초라한 모습이 존재해 있었다. 아직도 단체에서 느껴졌던 그 지인의 모습과 단체 속의 개인에서 느껴졌던 그 지인의 모습. 그리고 그 지인을 둘러싸고 있었던 단체의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교훈을 던져주곤 한다. 제발! 나 답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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