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Jun 19.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다수의 침묵이 키운 통제 불능의 괴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걸레를 책상 앞에 "탁탁" 내리치며 온갖 짜증과 분노를 다 쏟아내고 있었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상을 "박박" 문지르면서 계속해서 투덜대는 그녀의 모습은 프리랜서로서 가끔 그 사무실에 들르던 나로서는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늘 같이 지내는 직원들은 그런 그녀를 나 몰라라 하며 신문을 보고 있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나름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듯 보였다. 여하튼 그 회사와의 계약 건 때문에 가끔 방문했던 그곳의 아침 풍경은 매번 그런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뭐가 그리도 못 마땅했는지 그녀의 말과 행동은 다른 여느 때보다 더 과격해졌다. 투덜대는 정도가 아니라 소리를 지르면서 걸레를 내팽개치듯이 책상 위에 내리꽂았다. 그것도 직원들이 거의 대부분 출근을 한 상황에서 말이다. 물론 난 그 회사의 직원이 아니었기에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회사 내에서의 그런 무례한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그녀를 화장실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인생 선배로서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따끔하게 충고를 해줬다. 그랬더니 그녀가 막 울면서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잘못됐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누구도 자신에게 그러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순간 난 깜짝 놀랐다. 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행동이 사무실 분위기를 흐려놓는 게 뻔히 보이는데, 정작 그녀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누구도 그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충고를 해주지 않아 전혀 알 수가 없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때 알았다. 특정 한 사람을 둘러싼 다수의 침묵이 특정 한 사람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그 당시 그녀의 행동도 무척 무례했지만 그런 행동을 보고도 충고 한 마디 없었던 직원들 또한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 회사에서 경리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지 규모가 큰 회사가 아니었기에 경리 일을 하면서 동시에 온갖 잡다한 일까지 도맡아 했던 것 같다. 따라서 매번 자존심이 상했던 그녀는 온갖 짜증 섞인 행동을 일삼아 왔고, 그 수위도 점점 높아져 갔던 것이다. 반면 대다수의 직원들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무척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회사 내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 주기 때문에 딱히 충고를 하기에도 난처했던 모양이다. 그럼 소에 적극적으로 을 도와주든지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대다수 직원들의 침묵은 결국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한 괴물을 키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어 모임에서 기가 아주 센 사람이 있는데, 다들 그 사람의 기에 눌려서인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다 옳고, 무조건 따르는 식이다. 따라서 견제하는 힘이 없다 보니 자신의 힘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예를 들어 같은 동급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듯한 명령을 한다든지 말을 함부로 하면서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모임의 멤버가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그 모임을 바라봤을 때도 무척이나 거슬리는 부분인데, 정작 모임의 멤버들은 침묵하고 있다. 해코지당할까 봐? 왕따 당할까 봐? 무서워서? 그래서였을 게다. 그들의 침묵은 결국 물불 안 가리는 기센 괴물을 키우고 만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은 그 모임을 벗어난 곳에서는 그다지 센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임에 있어서만큼은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사람들에게 막 대하곤 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을 견제하지 않는 소리 없는 침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원래 센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치켜세워주는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통제 불능의 권력이 생겨난 것일 게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수직 관계가 아닌 수평 관계를 추구했더라면 그 사람을 그렇게 센 사람으로 만들어 가지 않았을 텐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위와 같은 경우들을 볼 수 있다. 크든 작든 어떠한 모임에 있어서 그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다들 피해를 입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그 누군가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계속해서 잘못된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따끔하게 충고를 해줘서 전체가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면 좋을 텐데, 딱히 그런 사람도 없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지 못한 채 매번 모임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놓기 일쑤다.


 사실 우리 가정만 보더라도 천상천하 유아독존 격인 중2 아들 녀석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단체 게임으로 인해 거의 새벽까지 친구들과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따라서 잠에서 깬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몇 번이고 조용히 하라고 충고를 하지만 정작 자신은 시끄럽게 한 적이 없다면서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당연히 커다란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우레와 같은 게임 사운드와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친구들의 고함 소리가 뒤섞여 도떼기시장 같을 텐데, 거기에다 대고 아무리 큰소리를 쳐본 들 자신의 목소리가 크다고 느껴지겠는가! 그래서 옆에 있는 가족들만 매일같이 혹사를 당하고 있는 신세다.  


 그렇다고 중2 아들 녀석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기엔 역부족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충고를 하다 보면 서로 간의 언성만 높아질 뿐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오히려 관계만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침묵만이 답이다. 물론 아이의 행동이 지나칠 경우엔 따끔하게 한 번씩 충고를 하지만 그것도 중2 사내 녀석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입에 지퍼를 달아놓았다. 사실 소리 없는 침묵이 아이를 통제 불능의 괴물로 만들어 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조용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 게임 관련 도떼기시장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북한도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그 무시무시한 중2인 것을. 비록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침묵만 지키고 있지만 이러한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한 빨리 침묵을 깨트릴만한 분위기 조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안 하는데 잔소리를 안 한다든지, 말을 안 듣는데 맛있는 것을 해준다든지, 게임만 하는데 화를 안 낸다든지, 말투가 거친데 조심스럽게 얘기한다든지 하면서 거의 도 닦은 스님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엄마인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좋은 충고를 받아들일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침묵이라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는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단체 속의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에 통제 불능의 괴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사람이든, 단체든, 그 무엇이든 악영향을 끼치게 될 침묵이라면 누군가가 용기를 내서 그 침묵을 깨트릴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러한 행위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