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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25.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백조의 힘찬 발길질

 무대의 막이 서서히 오르면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라는 연주곡이 귓가에 잔잔히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새하얀 발레리나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들처럼 무대 위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어쩜 저리도 황홀할까! 매 순간마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그 분위기에 흠뻑 압도당하곤 한다. 아마도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은 직접 가서 보았든, TV에서 보았든 누구나 한 번쯤은 감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아름답고도 황홀한 발레리나의 자태! 그런데 그 밑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까치발을 한 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나라 최고의 발레리나인 강수진의 발을 본 적이 있었다.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던, 그녀의 뭉개진 발을 보면서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발레리나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백조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호수에 떠있는 여유로운 백조의 모습, 그 물밑 세상은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힘차게 발길질을 해대는 백조의 발이 있다. 사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보다 여유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만큼 열심히 일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여유란 열심히 일하고 난 후에 비로소 누릴 수 있는 마음의 만족감을 말한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그날 해야 할 일을 끝마쳤을 땐 그다음 날은 보다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그날 해야 할 일을 그다음 날로 미뤘을 땐 그다음 날에 해야 할 일과 그전에 하지 않은 일이 추가되어 왠지 마음이 급해지곤 한다. 게다가 하루 미뤄진 일 때문에 계속해서 다음, 그다음으로 미뤄지게 되면 늘 불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


 예전에 첫 책을 집필할 때였다. 출판사 사장이 마감 기한을 정해준 상황에서 내 딴에는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판단하고 한동안 게으름을 폈다. 사실 난 고된 집필 작업에 앞서 실컷 놀고 싶었다. 그래서 집필 시작부터 집필 마감까지의 시간을 빠듯하게 잡아놓고 나머지 빈 시간을 친구들과 만나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동안 못 잔 잠까지 실컷 자면서 세상 편하게 지냈다. 그렇게 얼마나 뒹굴뒹굴했을까? 곧 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름 빠듯한 일정 속에서 일일계획, 일주 계획, 한 달 계획을 짜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계획대로 일을 서서히 추진해 나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글을 쓰기 위한 ‘자료수집’과 책 내용에 들어갈 ‘인터뷰’ 건에 문제가 발생했다. 자료수집에 있어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했고, 인터뷰 건에 있어서도 자꾸만 스케줄이 어긋나는 바람에 계획을 다시 짜야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일일계획, 일주 계획, 한 달 계획이 전부 틀어져버리는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고 자료는 턱 없이 부족하고, 인터뷰는 자꾸만 미뤄지고, 원고 마감은 다가오고…….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에 원고조차 제대로 써지질 않았다. 아마도 그 당시 원고 마감 임박을 앞두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 특히 가족들은 내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튼 원고 마감 기한을 넘기지 않고 겨우겨우 원고를 제출하긴 했다. 그래도 나름 책임감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고, 심지어는 막판에 3일 밤을 새우다가 쓰러지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었다. 미리 조금씩 해놓았더라면 여유 있는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고, 자료수집과 인터뷰 건에 있어서도 훨씬 만족도가 높았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3일 밤을 꼬박 새우다가 쓰러지는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 이후로 무슨 일이든 닥쳐서 하지 않고 미리 조금씩 해두는 나의 습관은 아마도 그 당시 아주 호되게 겪었던 우왕좌왕 첫 책 집필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게다.  


 사실 사회생활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중에는 정말 여유로운 백조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이면의 부지런함을 상상해 보기도 하는데……. 아마도 자신이 목표한 바를 완벽하게 소화해 냄으로써 표출되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곧 여유로운 모습으로 비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러니까 굉장히 부지런한 데다가 자신이 목표한 바를 꾸준히 이루어 나가는 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불안해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건 아마도 만족을 모르는 과도한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게으른 모습이 자칫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모습이 꾸준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마찬가지로 백조의 모습 역시 물밑에서의 발길질이 과하거나 덜할 경우 과연 그 여유로운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예로 백조의 모습을 엄마의 부지런함과 아이들의 여유로움에 비해 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의 부지런함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나 같은 경우도 첫째 딸아이가 어렸을 때는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시기엔 엄마가 정성을 기울인 만큼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지기 때문 공부 습관 잡아주랴, 다양한 경험시켜주랴, 학원 알아봐 주랴, 친구들 관계 형성해주랴, 좋은 음식 해서 먹이랴, 참 많은 것들을 해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첫째 딸아이는 보다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몸이 아파서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줄 경우엔 아이도 불안정해 보이고, 심지어는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따라 아프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이가 사춘기 때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하고 부모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아무리 사랑을 주고 싶어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춘기 증상 때문에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몸에 배어있었던 공부 습관, 생활 습관, 인성, 식습관 등의 기본적인 습관조차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모든 게 피폐해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삶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 시기엔 자신이 왜 그렇게 변해 가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냥 부모가 부담스럽고, 간섭이 싫을 뿐이다.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는 모든 부모들은 그런 사춘기 아이들을 옆에서 죽 지켜보면서 많이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명언처럼 어느덧 사춘기 시기도 지나가고…….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첫째 딸아이 모습에서 예전의 좋은 모습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느 한순간, 백조가 마음이 너무 괴로워 물밑 발길질을 거부하긴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물밑 발길질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자식이 그 무언가를 하고자 노력한다면 부모 역시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은 게 자식을 향한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죄책감을 갖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로서는 나름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아이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지금까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노라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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