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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18.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랄까?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자녀 교육에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나의 뒷모습 또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무척 궁금하긴 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인데, 어떤 아빠는 항상 자신의 서재를 열어둔 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들이 거실을 오가면서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자신의 뒷모습이 보이도록 책상 배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항상 아빠의 독서하는 뒷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늘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게 습관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책상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더라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빠가 늘 책을 읽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육아 교육에 있어서 나름 기발한 전략이기도 한 셈이다. 물론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따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예전에 독서토론 논술 교사로 일을 해왔다. 물론 지금은 그 일을 그만두고 간간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 당시 사용했던 8인용 토론용 탁자를 아직도 내 마음의 안식처로 사용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옷, 선풍기, 드라이기, 구멍 난 양말 등 책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잡다한 물건들이 점차 쌓여가긴 하지만 한편에는 컴퓨터와 프린터기, 각종 자료들, 그리고 필기도구 등이 늘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어서 언제라도 글을 쓰고 싶으면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 주곤 한다. 사실 난 꾸준하게 글을 쓰는 스타일이 못 된다. 다만, 정말 글이 잘 써질 때는 하루 종일이라도 앉아서 쓴다. 여하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노라면 5시 방향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거기에 문이 달려있다 보니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나의 뒷모습도 아닌, 그렇다고 나의 옆모습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가끔씩 아이들은 엄마인 내가 뭘 그렇게 열심히 쓰고 있는지 문밖에서 곁눈질로 힐끗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봐도 괜찮겠다 싶은 내용이면 그냥 화면을 띄워놓지만 혹여 아이들 얘기를 쓰고 있으면 재빨리 화면을 내려버린다. 그러면 눈치 빠른 딸아이 같은 경우엔 내 옆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갖은 애교를 부리고 나간다. 아마도 자신의 얘기를 쓸까 봐 미리 선수를 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사춘기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둘째 녀석은 엄마가 뭘 하는지, 자신의 얘기를 쓰든지 말든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저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내뱉고 나갈 뿐이다. “엄마, 배고파요.”, “엄마, 7시에 깨워주세요.”라는. 방금도 둘째 녀석이 잠깐 들어왔다가 나갔는데, 로봇과 자동차가 합체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옛 추억이 생각난대나 어쨌대나.


 사실 부모의 뒷모습이라는 게 기준이 참 애매하긴 하다. 난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주된 일은 살림이고, 남은 시간에 글을 쓴다. 늘 그렇듯 아침에 일어나 남편 출근시키고, 청소하고, 아이들 깨워주고, 강아지 챙겨주고, 밥 차려주고, 간식 챙겨주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빨래 개고. 장보고,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하고 나면 하루가 금세 후딱 지나간다. 솔직히 결혼 전에는 늘 살림만 하는 엄마의 모습이 무척 하찮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가정주부가 되고 보니 ‘살림살이’라는 게 이토록 중요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건대, 내 기억 속 엄마의 모습이 바로 내가 바라본 엄마의 뒷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옛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니까 말이다.


 인생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아이들은 지금 내가 살림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하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솔직히 평소에 “엄마가 저보다 더 힘들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걸 보면 가정 살림이 우스워 보이긴 한 것 같다. 예전에 나도 그랬으니까.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아이들 역시 어른다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부모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지금의 우리 가정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남편은 정말 열심히 사는 스타일이다. 가정적인 데다가 부지런하고, 참 따뜻한 사람이다. 이것은 남편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요령을 피운다든지 무책임하다든지 하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은 못 된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남은 인생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둘째 녀석의 경우, 그런 부모의 뒷모습을 보기나 하는 걸까? 아무리 사춘기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나가 거의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빠의 측은한 모습, 그리고 가정에 최선을 다하고, 그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하는 엄마의 발버둥은 전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오로지 자신의 방에서 게임에만 열중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가족 모두 마음을 비우다 보니 그럭저럭 살만한 집이 되었다. 사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우리 집안은 거의 아수라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원 빠지는 게 그야말로 밥 먹듯 했고, 그 와중에 친구들과의 신나는 게임은 또 무슨 염장을 지를 일인지……. 잔소리도 해보고, 혼도 내보고, 매도 대보고, 몸싸움도 해보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결국 부모만 지쳐갈 뿐 아이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그냥 기다려 줄 생각이다. 첫째 딸아이 역시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듯이, 둘째 녀석도 비록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리라 믿는다.


 다만, 내가 그 옛날 엄마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지금을 살아가듯이 아이들 역시 먼 훗날 내 뒷모습을 생각하며 보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금의 내 뒷모습에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내 엄마의 뒷모습은 그랬다. 어린 자식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했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으며,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식들에게 이렇다 저렇다 하소연을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 스스로 노래를 부르며, 자연을 사랑하며, 하느님에 의지하며 살았기에 지금까지도 자식들의 마음속에 편안한 안식처로 남아있다. 지금은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부모의 뒷모습! 어떻게 보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참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부모도 사람인데, 자식들 앞에서 행동도 조심해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하고…….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좋은 소리도 못 듣는 게 부모가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하는 얘기들은 다 우습게 들리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쩜 그 말들이 다 옳은 얘기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부모의 뒷모습은 그 자식들이 어른다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의 이정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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