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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Apr 23. 2021

천동설은 여전히
일주일을 지배한다

<미얀마 8요일력> 3화

우리는 지금 미얀마의 달력을 알아보는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미얀마, 인도, 점성술, 힌두교... 한국에서는 생소한 것들 투성이어서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알쏭달쏭 아리까리한 미지의 영역으로 매일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발을 들여놓을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스케일에 깜짝 놀라지만, 미얀마 달력에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어느새 집요하게 파고드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오늘은 미얀마 달력을 이해하는 밑바탕으로 몇 가지 중요한 개념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미얀마의 8요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일주일은 시간을 재는 단위 중 유일하게 천문학적 현상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말로 지난 글을 마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일주일의 이름은 너무나 천문학적이다. 과연 일주일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별 헤는 밤


시계가 없던 먼 과거에 시간을 알려면 자연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었다. 계절의 변화와 온도차, 동식물의 변화를 통해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지만, 자연 속에서 시간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뜨고 지는 해와 달,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었다.

매일 미세하게 움직이는 별의 이동을 관측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 앞으로 닥칠 하늘의 징조를 미리 아는 것은 나라 혹은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힘을 부여했다. 거대하고 변화무쌍한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인류 문명 어디에서나 자연과 신은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깨닫는 것은 신의 영역에 한 발짝 가까이 가는 일이었다.


고대의 천문학은 정확한 관측과 수학으로 정리된 현시대의 천문학(Astronomy)보다는 우주와 인간이 맺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 '점성술(astrology)'에 가까웠다. 점성술은 흔히 주술적이고 비과학적인 성격이 강조된다. 오늘의 점성술이 있기까지 오랜 세월 쌓인 진지한 천문학적 발자취가 자칫 폄하될 수 있기에 이 글에서는 점성술보다는 '점성학'을 쓰는 것이 좋겠다.


천동설의 우주 모형.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별자리)> 순으로 그려져 있다.



지동설 이전의 세계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의 학자가 주장한 이후 현대인들이 과학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는 지동설, 즉 태양중심설(heliocentrism)이 정설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5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긴 인류사를 생각하면 너무나 짧은 기간이다.

고대의 점성학은 인간이 발을 디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여러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이동한다고 믿었다. 태양중심설 이전에는 수많은 문명에서 천동설, 즉 지구중심설(Geocentrism)이 아주 오랜 기간 과학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진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Sumer) 문명과 바빌로니아(Babylonia) 문명에서는 점성학과 수학이 고도로 발달했었다. 바빌로니아 점성학은 해와 달을 포함해 눈으로 관측 가능한 태양계 다섯 천체(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 특별한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 일곱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공전한다는 지구중심설에서 각각의 공전주기에 따라 순서를 매겼다.


달       29일
수성    88일
금성    224일
태양    365일
화성    687일
목성    12년
토성    29년


천동설에서 각 행성의 위치 관계 모형 (c) Noh Sungil.



이 일곱 천체의 이름에서 일주일을 7일로 세는 방법이 연상된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천동설 모형을 자세히 보면 행성들은 일주일의 월화수목금토일 순서가 아닌 월-수-금-일-화-목-토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주일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요일 이름 정하기


현대 달력에는 이 일곱 천체의 이름이 요일에 붙어 있지만, 바빌로니아 점성학자들은 이 일곱 천체를 시간의 이름에 붙였다. 이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눠 공전 주기가 먼 천체인 토성부터 한 시간에 한 천체씩 이름을 붙였다. 일곱 천체를 매 시간에 반복해보면 하루는 24시간이기 때문에 3이 남아(7x3=21), 25시간째인 다음날은 네 번째 천체 이름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 이 방법으로 일주일을 세면 토-목-화-일-금-수-월 순서에서 두 개씩을 건너뛴 월-화-수-목-금-토-일 순서로 일주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24시간에 일곱 행성을 반복적으로 매치한 표. 매일 첫 번째 시간이 요일 이름이 된다. (c) Noh Sungil.
월-수-금-일-화-목-토 순서를 원형으로 배치하고 두 개씩 건너뛰어 선을 그으면 오늘날 월-화-수-목-금-토-일 순서가 된다. (c) Noh Sungil.



유레카! 일주일의 이름을 드디어 찾아냈다. 아주 오래전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일주일 개념이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여러 문명에서 요일과 신을 연결하고 있다. (c) Noh Sungil.



바빌로니아 점성학자들이 이룬 수많은 천문학적 업적들은 세계 여러 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서쪽으로는 페르시아를 거쳐 그리스, 이스라엘, 이집트, 로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졌고,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명을 통해 고대 인도에도 닿아, 지금의 힌두 점성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모든 것이 지구중심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식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태양중심설을 진리로 믿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월화수목금토일, 여전히 천동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일주일을 살아간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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