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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Apr 30. 2021

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미얀마 8요일력> 4화


오늘의 운세


누구나 한 번쯤 잡지나 신문 한편에 적힌 '오늘의 운세'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에 나오는 운세는 대부분 열두 간지 띠를 기준으로 적혀 있다. "00년생 호랑이 띠는 좋은 일이 생긴다." 바쁜 아침에 신문을 읽으며 휙 살펴볼 수 있는 한 줄 운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00년에 태어난 호랑이 띠는 수만 명은 될 텐데... 그 모두의 하루가 똑같이 흘러가지는 않을 테니, 가볍게 쓰인 오늘의 운세는 가볍게 보는 것이 좋겠다.


중국 역법에서 기원한 열두 간지 동물들. (c) Jakub Hałun



'오늘의 운세'에 등장하는 열두 간지는 오랜 옛날 중국의 갑골문자에서부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열두 간지 띠는 영어로는 중국 황도대(Chinese Zodiac)라고 불리지만 별자리와는 상관이 없다. 서양의 황도 12궁(Zodiac)이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에서 움직이는 경로를 열둘로 나눠 각 부분에 별자리를 정한 것이라면, 열두 간지는 한 동물에 1년씩 12년 주기로 반복된다. (tmi - 조디악의 어원을 보면 차라리 중국의 띠와 더 잘 어울린다.)


zodiac(조디악)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ζῷον (조이온) "동물"의 지소사 ζῴδιον(조디온)에서 파생된 "동물들의 원"을 뜻하는 그리스어 ζῳδιακὸς κύκλος(조디아코스 쿠클로스)에서 유래한 라틴 zōdiacus(조디아쿠스)에서 파생되었다. (위키백과, '황도대' 설명 부분)


해를 중심으로 정해진 황도 12궁. 이름(동물들의 원)과는 다르게 모두 동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서양의 조디악과 중국의 띠는 과거에 모두 비슷한 목적으로 쓰였다. 바로 인간의 운명을 점쳐보는 것. 깜깜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기 위해 '오늘의 운세'를 점치는 일을 인류는 본능처럼 해왔는지 모른다.



우주의 기운이 느껴진다..


고대 인도에서는 경전 베다(Veda)에 나타난 우주관을 기초로 베다 점성학(Vedic Astrology)이 발전했다. 베다 점성학은 힌두 점성학(Hindu Astrology)이라 부르기도 하고 산스크리트어로는 조티샤(Jyotish), 즉 '빛과 천체(light, heavenly body)'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은 점성학을 비과학이라 부르지만 과거에는 첨단 과학이었다. 별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측하기 위해서는 발전한 수학과 측량학이 필요했다. 


조티샤는 우주의 수많은 별과 천체가 인간에게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발전했다. 인도의 요기(Yogi)들이 요가 수행을 통해 우주에 속한 인간의 존재를 발견하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어지는 활동이다.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우주의 기운을 느껴봅니다..٭


조티샤를 그려놓은 인도의 한 책 표지. (c) romana klee



조티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지난 1화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미얀마 사람들도 동일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태어날 때 우주의 에너지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사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탄생 점성학(Natal Astrology)이다.


탄생 점성학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지만 말이 나온 김에 간단히 소개해보려 한다. 

"응애"하고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우주에 생명의 소리가 울려 퍼진 바로 그 순간! 인간의 삶의 터전인 땅과 하늘이 만나는 동쪽 지평선에 떠오르는 행성이 상승점(ascendant)으로 그 아기의 가장 중요한 행성이 되어 특별한 에너지를 준다. 그다음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빛을 내는 해와 달(천동설의 세계에서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으로 여겨졌다)의 위치가 영향을 미치고, 태어난 당시 중천에 떠서 직접 에너지를 전하는 행성인 중천점(midheaven) 또한 중요한 행성이 된다. 부모는 아기가 태어나면 우주와 아기가 맺을 관계를 역술인 또는 점성학자에게 물어 앞으로 아기가 마주할 운명을 점쳐본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내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인도 탄생 점성학에서 결과를 기록하는 천궁도(horoscope)를 찾아보았다. 자신의 천궁도가 궁금한 분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prokerala.com/astrology/birth-chart/


결과가 아래처럼 나왔다. 세 도표를 보면 전혀 다른 결과로 보이지만, 기록하는 지역에 따른 차이일 뿐,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도표의 형태가 중요한 지점이기에, 천궁도의 뜻을 더 깊이 해석하지는 않으려 한다. 


같은 일시로 계산한 출생 천궁도 (c) prokerala.com


한 사람의 태어난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이 지역에 따라 이렇게나 다르다. 하우스(house)라 불리는 1~12번이 시작하는 위치, 회전하는 방향, 구획을 나누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세 가지 천궁도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동인도 천궁도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미얀마의 달력에 동인도 천궁도와 매우 유사한 도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2019년 1-3월 미얀마 달력. 매월 달력 옆에는 그달의 운세를 적은 지면이 있다. (c) Noh Sungil  


위에 소개한 동인도 천궁도를 미얀마 방식으로 옮기면 오른쪽과 같다. (c) Noh sungil



미얀마 점성학의 기원


서두에 꺼낸 운세 이야기는 이렇게 미얀마 달력으로 이어진다. 


미얀마에 방문했을 때, 식당 벽에 걸린 달력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달력 한쪽에 동그라미가 적힌 표가 붙어 있었다. 읽을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왠지 달력과 함께 있기에 운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었다. 


이제는 미얀마 달력에 적힌 동그라미 도표가 보름, 그믐 등 그달의 특정 시간에 위치하는 천체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미얀마 점성학은 마하보트(Mahabot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마하보트는 '작은 그릇'이라는 의미로, 인도 점성학에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라는 뜻이다. 미얀마 천궁도가 동인도 천궁도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을 볼 때, 마하보트는 과거 동인도 지역 점성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점성학이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또 한 가지 증거를 달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월 미얀마 달력을 다시 보자(아래). 



1월 5일과 20일 아라비아 숫자 왼쪽에 큰 점이 찍혀 있다. 그믐(망)과 보름(삭)이다. 다른 날짜에는 점이 있던 위치에 미얀마 숫자 1~13 또는 1~14가 반복된다. 이 숫자는 15일 기준으로 바뀌는 미얀마 음력 표기로, 바로 이 숫자들이 인도와의 연결고리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밤하늘의 달을 기준 삼아 한 달을 셌다. 그믐에서 보름달이 되어가는 '밝은 15일'인 슈크라 팍샤(Shukla Paksha), 보름달이 다시 그믐으로 어두워지는 '어두운 15일'인 크리슈나 팍샤(Krishna Paksha) 두 부분으로 한 달이 다시 나뉜다. 베다 시대(Vedic era)에는 한 달이 보름달에 끝나고 시작되는 푸르니마(Purnima)를 주기로 했다면, 기원전 57년 등장한 비크라마 역법(Vikramasamvat)을 따르는 일부 지역에서는 월말의 기준을 달이 사라지는 망에 두는 아만타(Amanta)를 따르기도 했다. 미얀마 달력은 망을 지나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 미얀마 달력에는 인도식 한 달 셈이 담겨 있다.


인도식 음력의 월말을 구분하는 두 가지 방법 (c) Noh Sungil


미얀마 별자리를 살펴보자. 미얀마도 서양 별자리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30°씩 열두 개로 나눠 자디(ရာသီ, yathi)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 미얀마 별자리 이름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다.

미얀마와 인도의 별자리 이름 비교 (c) Noh Sungil


 


별밤을 기억하며


천체를 기준 삼아 일상을 이어가고, 그 천체의 에너지가 미치는 운명의 영향을 생각하는 삶... 요즘에는 좀처럼 떠올리기 힘든 일이다.


어린 시절 지리산 자락 외딴 우리 집에는 해가 지면 끊기는 버스와 함께 인적도 끊겼다. 간간이 '오! 오! 오!' 하며 둔탁하게 우는 큰 개소리가 고요를 깼다. 빛이 사라져 사방이 깜깜한 밤에는 하릴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낙이었다. 겹겹이 둘러싸인 어두운 산을 조금이라도 벗어나 숨을 쉬고 싶었을까? 아직 꼬마였던 나는 곧잘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눈을 들어 무수히 흩어진 별 사이로 흐르는 빛의 강을 멍하니 보곤 했다.  


성인이 되면서 산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어둡고 답답한 산이 있던 자리에는 별빛처럼 빛나는 도시의 건물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더 이상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우러러보지 않아도 별빛보다 더 찬란한 빛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게 좋았다. 한참을 도시의 빛을 따라가다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건물 틈 사이로 좁고 희뿌연 하늘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별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앞날을 알려주던 고대의 별들은 이 도시에 필요 없어진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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