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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May 07. 2021

미얀마 달력의 기원년, ID;peace B

<미얀마 8요일력> 5화

집을 지을 때면 땅 위에 바로 집을 짓지 않는다. 집이 설 자리는 얼마나 안전한 지 꼼꼼히 따져보고 흙을 깊이 파서 다지거나 골라내 기초를 튼튼히 다진다. 그 이후에는 주춧돌을 놓아 집이 흔들리거나 가라앉지 않고 안전하게 서있을 수 있도록 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하는 일에도 주춧돌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이 바로 에포크(epoch), 즉 기원(紀元)이다. 기원은 시간의 기준이 되어, 그 기원을 따르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 안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세상에는 많은 기원이 있다. 가장 익숙한 기원은 현대 사회가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서기(西曆紀元)이다. 서기는 기원을 그리스도(Christ)의 탄생으로 정하여 표기를 AD(Anno Domini, 주의 해)와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로 적는다. 서력의 정체성은 명확하다. 인류의 시간은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흘러가는 것. 

현대에는 탈기독교, 종교 중립적인 흐름을 존중하며 서력을 CE(Common Era), BCE(Before Common Era)로 표기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또 다른 기원은 바로 단기이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BC 2333년을 기준으로 한민족이 그들의 후예임을 인정하는 기원이다. 2021년 올해는 단기 4354년이다. 



미얀마 달력의 기원


미얀마 달력에도 기원이 존재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서기 638년 3월 22일을 미얀마 달력 기원으로 정하고 있다. 638년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조선왕조실록처럼 미얀마 왕실을 기록한 연대기에 따르면 미얀마 달력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마름모꼴의 미얀마 지역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에야와디(Irrawaddy) 강 유역은 예부터 너른 평야 지대로 사람이 모여 살기 좋았다. 아직 부족 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던 미얀마 지역에서는 힌두교의 칼리 유가(Kali Yuga, 3102 BCE 기원)를 기원으로 따르고 있었다. 힌두교 세계관에서 칼리 유가는 말세로, 다르마(Dharma, 법)가 사라지고 아다르마(Adharma)의 화신 칼리가 세상을 지배하여 사람들이 욕망을 따라 분쟁과 죄를 지어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생명의 원천인 소를 죽이려는 악마 칼리와 그를 막아서는 사람. 


퓨(Pyu) 족이 미얀마 북부에서 남하해 에야와디 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세운 미얀마 최초의 도시국가는 뜨가웅(Thagaung) 왕국이다. 유적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왕실 연대기에 따르면 북인도 콜리야(Koliyas) 왕국에서 부처님의 후손이 미얀마 지역으로 이주해 뜨가웅 왕조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부처님이 입적한 544 BCE을 기준으로 불기를 따르게 된다. 불기는 이후 퓨 족이 세운 도시들로 퍼져 나갔다. 

 

기원전 57년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의 우짜인(Ujjain) 왕국을 다스리던 비크라마(Vikramaditya) 왕이 사카 왕국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비크람 달력(Vikram Samvat)'을 만들어 공표한다. 

기원 후 78년 인도 북서부 지역에서는 사카 기원(Shalivahana era, Saka era)이 등장한다. 이 사카 기원은 현재 인도 정부가 공인하는 인도 국경력 상 인도의 기원년이다. 사카 기원년 78년의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북인도와 파키스탄, 카슈미르 지역까지 두루 통일한 쿠샨(Kushan) 왕조의 카니슈카 1세(Kanishka I)가 즉위한 해가 78년이라는 가설이 과거에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의 즉위가 서기 127년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인도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마투라(Mathura) 박물관에 있는 카니슈카 1세의 동상을 보면 "위대한 왕, 왕 중의 왕, 신의 아들, 카니슈카(Mahārāja Rājadhirāja Devaputra Kāṇiṣka)" 라는 칭호가 적혀 있다. 또한 그리스 문자가 적힌 카니슈카 왕의 동전도 존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인도와 주변 지역을 넘어 세계 각지로 영향력을 끼친 쿠샨 왕조의 힘을 어느 정도 예측해볼 수 있다.


카니슈카 왕의 석상(왼쪽)과 새겨진 칭호, 그리스 문자가 적힌 카니슈카 금전(오른쪽 위) (c) Biswarup Ganguly, World Imaging


서기 80년, 미얀마 지역에서는 퓨(Pyu)족의 스리 크세트라(Sri Ksetra) 왕국에서 사카를 새로운 기원으로 사용한다. 사카 기원을 썼다면, 당시 스리 크세트라는 쿠샨 왕조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고, 그 당시 왕들의 이름에 '비크라마'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북인도 지역에서 사용되던 비크라마 달력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연결고리를 추측해보게 된다.


스리 크세트라 왕국 당시 유적인 보보지 불탑. (c) Jakub Hałun


스리 크세트라의 멸망 즈음 몬(Mon) 족의 신흥국가 버간(Pagan) 왕국이 급부상한다. 버간은 초기에 사카 퓨 기원을 쓰고 있었는데, 버간의 20대 왕 뽀빠 소라한(Popa Sawrahan, 613-640 재위)이 서기 640년에 달력을 재조정하여 새로운 기원년을 정하고 꼬자(Kawza Thekkarit, ကောဇာ သက္ကရာဇ်)라 불렀다. 뽀빠 왕은 사카 연대로부터 560년이 지난 서기 640년에서 사카 연대와의 차이 2년을 뺀 638년이 버간 왕국의 새로운 기원이 되었다. (드디어 미얀마 달력 기원을 찾았다!)



기원과 정체성


기원은 세계 단위, 민족 단위, 작게는 회사, 가족에 이르기까지 특정 사건을 기준 삼아 공동체가 그것을 기억하게 한다. 다시 말해 기원을 정한다는 말은 삶에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힌두교, 불교, 독립과 자주성, 근대 서양 문명과의 관계... 


미얀마 달력이 걸어온 발자취, 특히 무엇을 기원으로 삼았는지를 살피면서 여러 민족과 언어, 종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 땅 사람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보게 된다. 


어릴적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 단일 언어로 맺어진 한 공동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 자부심을 느끼라던 말씀도 그는 잊지 않고 덧붙이셨다.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된 한국에서 오래전 선생님의 그 자부심 섞인 말씀은 혐오스러운 표현이 되었다. 단일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할 자격을 주는가? 

그리고 그 말을 들었던 시절 즈음 TV에서 보았던 가수 보아의 데뷔곡 'ID;Peace B'가 생각난다. 


서로 많이 다른 것도 이상할 게 없죠 세대 차이 뿐인 걸 그게 뭐가 어떤가요
예전부터 우린 모두 하나인 걸 나를 믿어 보세요
그 속에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가 있죠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다문화의 용광로와 같았던 미얀마, 그 흘러간 시간 복판에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한 미얀마 사람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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