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목동에 갔다 오는 길에 HJ에게 연락해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보자면 아직도 내가 가보지 못한 동네가 훨씬 더 많을 테지만, 그 동네 동네를 지하철이 잇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지도를 보니 역 주변을 다양한 브랜드의 아파트 단지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지난번엔 경외심마저 들게 하는 압도적인 풍채에 입어 떠억 벌어졌다면, 오늘은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서울과 연결된 노선이 있는 것에 감사해하며 등 떠밀리고 있다.
그저 간단히 밥을 먹으려고 한 것인데, 어제 나에게 찾아온 요행을 이야기하니 제 일처럼 기뻐하며 한턱을 쏘겠단다. 고맙다 하며 따라나섰고, 그전부터 평양냉면의 최고 존엄처럼 칭찬하던 봉피양으로 향했다. 한창 바쁠 점심시간은 피했지만 가게 앞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혼돈 그 자체였고, 그 속에서 파란 조끼를 입은 발렛파킹원들이 질서를 바로 잡고 있었다. 가게 밖으로 줄 선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별관으로 향했다.
HJ는 메뉴를 물어보고 고를 것도 없이 맛보기냉면 물과 본갈비 2인분을 주문했다. 가게 벽면 한가운데에는 이 맛집이 어느 방송에 나왔노라고 방정맞지 않게, 아주 무게감 있게 소개하고 있었다. 경력 60년의 평양냉면 명인은 김 씨고 후계자는 탁 씨라, 아들한테 안 물려줬나 보네 했더니 고기를 구워주시던 아주머니가 아니라며 설명해주신다. 봉피양을 비롯한 음식점을 경영하는 회장님은 따로 계시고 아들에게 물려줬다고. 명인은 종로에서 평양냉면으로 이름 날리던 우래옥에서 모셔와서 냉면만 만드셨다고 한다. 돈 많이 버셨겠네요? 하고 장난기 섞어 여쭤보니 2년 전에 돌아가셨단다. 아... 그리고 명인의 발인날, 봉피양에서 손님들에게 냉면을 무료로 나눴다는 말에 명인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다.
평양냉면은 안 좋아하는 사람은 안 좋아하기도 한다며, 아주머니는 내가 육수를 한 입 들이켜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셨다. 지난번 HJ와 먹었던 평양냉면은 맛이 밍밍해서 영 내 입맛은 아니올시다였지만, 봉피양은 그보다는 맛이 진해 괜찮았다. 뭘로 육수를 낸 것 같냐고 물어봐서, 제가 음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래서 뭘로 만들었나요 하고 되물었다. 소뼈, 돼지뼈, 닭뼈로 육수를 냈단다. 우와! 했지만 사실 나는 원래 뭘로 육수를 내는지 모르기 때문에 소와 돼지와 닭의 조합이 대단한 것인지도 잘 몰랐다. 어쨌든 맛만 좋으면 되지 않나.
폴바셋에 꽂힌 HJ는 전에 알고 있던 지점을 찾아 차를 몰았다. 첫 번째 지점은 다른 매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두 번째 지점은 다행히 운영중이었다. 나는 수박주스를 주문했는데, 내가 왜 6천 원을 내고 이걸 마셔야 하지? 그러고 보니 요즘 수박은 얼마나 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펌킨식혜가 나았으려나. 얼마간 재잘재잘 떠들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