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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간송미술관, 지켜낸 마음이 머무는 자리

by 무드온라이프


첫인상, 품격


대구간송미술관 앞에 섰을 때, '품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보이는 것은 절제되어 있지만, 공간 전체에서 묵직한 품격과 간송의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잠시만 머물러도 어떤 정신이 이 자리를 떠받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캐노피와 나무 기둥. 절제된 수평선과 자연의 풍경이 어우러진 외관 © 출처: 필자


전통미술관을 기다렸던 마음


대학 시절, 인사동 골목 안에 자리한 경인미술관을 종종 찾았다. 자그마한 마당과 툇마루가 있어 미술관이라기보다 오래된 집에 들어서는 포근한 느낌이었다. 당시 인사동은 지금의 인사동과 많이 달랐다. 길거리 전체에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어 고즈넉했었다. 조용하고, 대학생이 가기엔 조금은 어른스러운 장소이기도 한 거리였다.


경인미술관을 보면서 언젠가 한국의 전통미술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미술관이 생기기를 조용히 기다려왔다. 그 오래된 기다림이 오늘의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송 전형필 — 조용한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의 조용한 결심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켜냈다. 절제된 표정에서 한 시대를 향한 중심이 또렷하게 전해진다.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 전형필(1906–1962)은 평생을 바쳐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젊은 시절부터 한국 미술의 가치를 깊이 이해했고, 소중한 유물이 제자리를 잃지 않도록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내어놓았다.


그는 문화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가장 고요한 방식의 독립운동이라 믿었고, 위기의 순간마다 유물을 지켜냈다. 1938년 성북동에 보화각을 세워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을 열었고, 그가 지켜낸 유산들은 지금도 한국 문화의 뿌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이던 시절, 전형필은 훈민정음해례본과 청자 운학문 매병, 신윤복 화첩을 지키기 위해 그 몇십 배의 금액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어놓았다. 그의 선택은 한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온전히 품으려는 중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간송미술관 — 성북동 보화각에서 대구까지


보화각 초기 전경(1938). 전형필이 성북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보화각)은 오랜 시간 ‘보존’을 최우선으로 해온 장소였다.
간송이 지켜낸 유물들은 한 시대를 건너온 문화의 최후 보루였고, 그만큼 쉽게 문을 열 수 없는 공간이었다.


소장품을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024년 대구에 첫 분관을 개관했다. 그곳이 바로 대구간송미술관이다.



대구간송미술관 — 국제설계공모로 시작된 첫 분관


대구간송미술관은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연세대학교 최문규 교수와 가아건축사사무소의 설계안으로 2024년 9월 문을 열었다. 산새가 수려한 곳, 바로 옆에는 대구시립미술관이 있어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문화권을 이루고 있다.


산자락과 맞닿은 대구간송미술관의 외관. 팔공산 능선 아래에서 건물의 전체 실루엣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 출처 :필자


연면적 약 8,000㎡의 건물 안에는 여섯 개의 전시실, 보이는 복원실, 아카이브집, 아트숍이 들어섰고,
개관 첫 해인 2024.9~2025.9 사이에 406,048명, 약 40만 명이 찾았다. 그중 절반은 대구 외 지역 관람객이어서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 개관 후 방문했을 때, 많은 인파로 발걸음을 되돌렸었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대구간송미술관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기둥·주춧돌·지형이 만드는 열린 시선


대구간송미술관의 건축에는 분명한 태도가 있다. 지형을 바꾸기보다 자연의 흐름 위에 건물을 얹는 방식이다. 기둥 사이로 팔공산의 능선이 곧게 이어지고, 전통 처마기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나무 기둥은 공간의 축을 단단하게 세운다.


설계자가 언급한 도산서원의 공간 감각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서원의 기둥 너머로 풍경이 스며드는 열린 구조처럼, 미술관의 캐노피 아래에서는 산과 하늘이 건축과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기둥 사이로 팔공산의 능선이 곧게 흐른다. 건축과 자연의 축이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 ©출처: 필자


다듬지 않은 자연석 주춧돌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듯 건물과 땅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섬세한 장식을 더한 그 어떤 캐노피보다, 무심한 주춧돌 위에 곧게 선 전통기둥의 존재감에서 더 깊은 울림이 일어났다.

이 열린 구조가 대구간송미술관의 품격을 또렷하게 세운다.



흙으로 생활을 만들고,
색으로 마음을 그리고,
붓으로 정신을 남겼던 시대.





흙 — 어둠 속에서 빛이 머무는 자리


첫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이 아니라 도자기의 빛이었다.
조도가 낮은 공간에서 도자만이 은은하게 떠올라, 형태와 선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도자들은 전시실 중심에 여유 있게 배치되어 있어 앞·옆·뒤를 걸어가며 입체 전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

대구간송미술관 첫 전시실 전경. 어둠 속에서 도자가 중심을 이루며 고요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공간. ⓒ출처 : 필자


흙이 굳어가는 결, 유약의 번짐, 자연스러운 곡선이 고요하게 살아 있었다.

부드러운 비색과 단정한 선에서 한국 도자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본질만으로 충분히 깊은 울림을 주는 순간이었다.

빛과 색이 겹쳐 만들어내는 잔잔한 흔들림이 공간 전체에 퍼져, 전시실이 하나의 고요한 몽(夢)처럼 느껴졌다.


은은한 비색과 섬세한 상감 문양이 돋보이는 고려청자 매병. 고요한 빛이 형체를 감싸며 전시실 전체를 단단하게 채운다. ⓒ출처 : 필자


조용한 비색을 머금은 매병 한 점이 전시실 한가운데 고요하게 서 있었다.
길고 좁은 목에서 둥글게 부푼 어깨로 이어지는 매병 특유의 곡선은 매화 가지가 하늘로 뻗는 모습처럼 자연스럽고 단정했다. 빛을 받은 표면에는 잔잔한 유약의 흐름이 스며 있어, 흙이 갖고 있던 숨결이 그대로 살아나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떠오르는 이 매병은 고려 도자의 품격이 어떤 것인지 한순간에 보여주는 중심과도 같았다.


청화백자인물문팔각병, 19–20세기. 대나무 그림자 아래 고요히 앉은 선비의 시간, 흙의 곡선 위에 머문 작은 풍경. ⓒ출처 : 필자


매끄럽게 깎인 여덟 면 위로 청화의 선들이 얇게 번지고, 대나무 숲 아래 거문고를 타는 선비의 숨결이 잔잔하게 스며 있다. 돌판 위에 몸을 기대고 앉은 인물,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그 사이를 느리게 흐르는 여백.

조선 말기, 청화 안료가 일본을 통해 널리 유입되던 시기, 장인의 손끝에서 흙은 스스로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색 — 종이와 비단 위에 피어난 마음의 결


도자의 온기를 지나자,

색과 선이 종이·비단 위에서 다시 숨을 틔우고 있었다.

산수와 인물의 세계가 색의 결을 따라 천천히 드러났다.


신윤복의 송정관폭, 계명곡양


인물화로 널리 알려진 신윤복이 남긴 귀한 산수 두 점.「송정관폭」은 맑은 공기 속 폭포의 고요를,「계명곡암」은 짙은 먹빛으로 골짜기의 울림을 전한다.


신윤복, 「송정관폭」·「계명곡암」 — 소리와 고요가 만나는 두 폭의 산수 ⓒ출처 : 필자


김홍도의 월하취생(月下吹笙) — 달빛 아래 머문 시간


김홍도의 월하취생은 달빛이 내려앉은 고요한 방 안에서 한 사내가 생황을 불며 마음 깊은 곳을 드러내는 장면을 담고 있다. 흩어진 문방도구 사이, 낮게 깔린 시·서·화의 기운 위로 그의 숨결은 예술의 기쁨과 삶의 슬픔을 함께 실어 보낸다. 조용한 화면 안에 김홍도 자신의 내면과 사색이 은근히 배어 있다.


김홍도, 「월하취생」 — 달빛 아래 흐르는 숨결 ⓒ출처 : 필자


신윤복의 청금상련(聽琴賞蓮) — 가야금 소리 위에 떠오른 연꽃


신윤복의 청금상련은 여름날 정원에서 열린 풍류의 순간을 포착한다. 가야금의 선율과 연꽃 향기, 남녀의 자연스러운 눈빛까지 당시 양반 문화의 세련된 취향과 은근한 감정 흐름이 어우러진다.

가볍게 보이는 장면 속에 인간관계의 결과 시대의 풍류가 담긴 작품이다.


신윤복의 이승영기(尼僧迎妓) — 비구니와 기생이 마주 선 순간


버들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처럼 비구니와 기생이 마주 선 순간의 미묘한 온도를 그린다. 단정한 얼굴, 고요한 눈빛. 겉모습의 아름다움보다 인물의 내면을 품고 있는 초상화에 가깝다.


삿갓을 눌러쓴 비구니의 깊은 인사, 장옷 아래표정을 숨긴 여인의 담담한 시선, 그리고 그 장면을 지켜보는 시종의 눈빛까지 더해지며 여성들의 서로 다른 삶의 층위가 조용히 드러난다.


신윤복, 「청금상련 · 이승영기」 —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두 장면 ⓒ출처 : 필자




붓 — 한 획에 남은 정신의 자리


예부터 서예는 글씨를 익히는 일을 넘어 학문을 깊이 닦고 마음을 단단히 세우는 과정으로 여겨졌다.
붓을 드는 순간의 호흡과 먹빛의 농담에는 한 사람의 태도와 정신이 고요하게 스며 있었다.


안평대군은 송설체의 균형과 품격을 바탕으로 조선 초기 서풍의 단단한 기틀을 세웠다.
한호는 석봉체의 힘 있는 흐름으로 한글 필서의 새로운 방향을 열었고, 이광사는 비석 탁본을 오래 연구하며 옛 글씨의 숨을 행서의 리듬으로 되살렸다. 김정희는 전서와 예서를 토대로 사유의 깊이가 담긴 새로운 서법을 완성했다.


《지장보살본원경》 — 안평대군이 모친 소헌왕후를 위해 금니로 쓴 필사본 ⓒ출처 : 필자


안평대군이 감지 위에 금니로 베껴 쓴 《지장보살본원경》은 모친을 향한 정성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송설체의 균형 잡힌 구조와 유연한 붓결이 고요하게 이어지며 그가 지녔던 품격과 마음가짐이 화면 전체에 스며 있다. 조선 전기 최고의 서예가로 불렸던 이유가 이 한 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원진중경서첩》 한호(韓濩, 1543–1605, 호: 석봉) · 조선 중기 ⓒ출처 : 필자


이 서첩은 조선 중기 대표 서예가 한호(석봉)의 필적을 담은 작품으로, 당대에서 이상적 필본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균형 잡힌 구조와 힘 있는 필세가 특징이며, 반흘림체의 형식을 정교하게 완성해 조선 중기 목판 인쇄와 서체 표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한호는 궁중의 글씨를 담당하던 최고 수준의 서예가였으며, 그의 서체는 이후 조선 서예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윤두서 「심산지록」— 깊은 산의 기운을 그린 문인의 눈


문인화가 윤두서(1668–1715)가 남긴 「심산지록」은 사슴과 지초(芝草)를 소재로 한 대형 작품이다.
윤두서는 조선 후기 17세기말에서 18세기 초에 활동한 화가로, 해남 윤 씨 가문의 후손이며 문학·학문·예술에 모두 능한 인물이었다.


작품에는 길상의 상징인 흰 사슴과 지초, 산수 요소가 함께 배치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남인 문인화의 계보 속에서 다양한 사물 표현을 시도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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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윤두서 《심산지록》원작 . 영지와 사슴을 정교한 필치로 그린 조선 후기 문인화. 우:《심산지록 》연출설치— 원작의 구성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한 공간 연출 ⓒ출처 : 필자



‘삼청도도(三淸圖)’- 매 · 죽 · 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


삼청(三淸)은 전통 회화에서 군자의 품성을 상징하는 세 가지 소재를 말한다.
매화의 절개, 난초의 향기, 대나무의 곧음이 하나로 모여 맑고 단단한 마음의 태도를 보여준다.


전시에서 삼청을 중심에 둔 이유도 이 정신의 흐름을 다시 바라보고, 그 속에 담긴 품격을 오늘의 시선으로 전하고자 한 뜻으로 읽힌다.


대구간송미술관_삼청도도 전시입구 벽면 ⓒ출처 : 필자
대구간송미술관 삼청도도 전시 구성 ⓒ출처 : 필자


1부 삼청(三淸), 조선의 자존을 지킨 시대의 보물


이정(李楨)을 비롯한 문인 화가들이 남긴 삼청 그림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매화·난초·대나무를 그리며 품었던 기상과 고요한 마음의 결이 작품 속에 또렷하게 드러난다.
조선 회화가 지닌 품격과 정신을 가장 단정하게 보여주는 자리다.


이정의 우죽(雨竹). 검은 비단 위에 금니로 그린 대나무 ⓒ출처 : 필자


2부 탄은 이정(李楨), 대나무로 세상을 울린 한 사람


2부는 탄은 이정(李楨)의 예술 세계를 집중해 보여주는 공간이다. 탄은(坦隱)’은 이정이 사용한 호로, 평온한 마음으로 세속을 벗어나고자 한 그의 삶의 태도를 담는다.


대나무를 그리는 필력에서 조선 문인화의 정수가 드러났고, 그의 작품은 한 시대의 기준이 되었다. 젊은 시절 삼청첩을 완성하며 자신만의 양식을 세웠고, 이후 평생 대나무를 그리며 예술적 깊이를 꾸준히 확장해 갔다.


이정의 문월도. 달을 바라보는 고사의 장면 ⓒ출처 : 필자


문월도(問月圖)는 바위에 걸터앉은 고사가 달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한 번의 붓놀림처럼 보이는 옷자락의 선, 헝클어진 머리, 벗어진 발은 세속을 벗어난 인물의 고요한 기운을 전한다. 달빛은 고사의 얼굴을 어린아이 같은 미소로 비추며, 세상 너머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을 암시한다.


2부 전시 공간 — 이정의 대나무가 남긴 결과 호흡이 고요하게 이어지는 자리 ⓒ출처 : 필자


빛이 절제된 전시실에 걸린 세 폭의 족자는 이정이 평생 쌓아 온 필력과 정신의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먹의 번짐, 선의 탄력, 잎의 방향이 서로를 견제하며 화면에 무게와 긴장을 만든다.


3부 절의, 먹빛에 스민 선비정신


3부는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조선 문인들의 정신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들은 매화를 통해 절개를, 대나무를 통해 곧음을, 난초를 통해 청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삶의 태도를 그림에 남겼다.


이정. 매화 한 가지가 절개를 전한다. 먹빛의 번짐과 여백이 선비의 마음을 말한다. ⓒ출처 : 필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시대를 지나며, 조선의 문인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들을 먹빛에 담았다.

먹의 짙고 옅음, 선의 굳고 유연한 흐름, 여백의 긴 호흡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한 점 흔들림 없이 드러난다.

3부에 전시된 작품들은 단지 상징적 도상을 넘어, 삶을 지탱하던 신념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림 앞에 서면 조용하지만 강한 목소리가 남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살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이 먹빛 안에서 다시 또렷해진다.


매·난·죽의 상징을 하나의 공간에 모은 3부 전시. 선비정신의 궤적이 조용히 드러난다. ⓒ출처 : 필자


4부 불굴, 붓끝에 서린 항일의 결기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선비들은 매화와 난초, 대나무를 통해 자신의 정신을 지켜냈다. 그림 속 먹빛에는 나라를 향한 마음과 지조를 지키려는 의지가 은은하게 배어 있다. 혼란의 시대를 통과한 이들의 삶은 어떤 신념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고요하게 전한다.


김구 〈나의 소원〉 일부 — 나라의 품격을 말하는 문장 ⓒ출처 : 필자


이 문구는 백범 김구가 『나의 소원』에서 밝힌 생각을 전시장에 옮긴 것이다. 그는 국력과 경제력의 목표를 침략이나 경쟁이 아닌, 국민의 삶을 지탱하고 지킬 힘으로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 그 바탕에 문화의 깊이를 두었던 그의 생각은 지금도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이회영(李會榮)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여섯 형제와 함께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건너갔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항일 투쟁의 기반을 마련해 나갔다. 이회영의〈석란〉에는 망명길에서 겪은 고단한 시간이 스며 있으며, 석란을 그리는 절제된 필선에 선비의 기품이 담겨 있다.


〈석란〉, 이회영, 1920 — 망명지에서 그린 바위와 난초의 결기 ⓒ출처 : 필자


김진우(金眞宇, 1883-1950)는 만주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허심수덕〉은 굵은 왕대와 가는 죽순을 대비해 배치한 작품으로, 절제된 구성 속에 그의 강한 기개가 드러난다.

선의 힘과 먹빛의 깊이는 독립운동가로서 지켜온 마음을 조용하게 전한다.


일주 김진우 〈허심수덕〉, 1932 — 곧은 기개를 품은 대나무 ⓒ출처 : 필자




대구간송미술관 전시 문구 — 마음에 남은 한 문장 ⓒ출처 : 필자



마무리하며


대구간송미술관을 나서는 길,

짧은 관람 속에서

수백 년의 결이 포개지며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마음으로 지키고 이어왔기에

현재의 우리가 누리고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마치 정갈한 한 끼를 깊이 음미한 뒤처럼

마음에 고요함이 천천히 채워졌다.


그 흐름 앞에서

나의 마음 역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선비들이 곧은 줄기를 마음의 중심으로 삼았듯

내 안에 자라는 대나무를 새삼 발견한다.


흔들리는 날에도 방향을 잡아주는 마음,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가치,

내 삶을 바라보게 하는 조용한 힘.


그 마음이 앞으로의 걸음을 조용히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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