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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 is More, 비움으로 채워지는

마음의 파빌리온

by 무드온라이프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파빌리온은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울림의 공간이다.


1. 시대의 선언, 파빌리온


비워진 듯, 하지만 단단히 채워져 있다.
조용히 스며든 빛이
공간의 질서를 지켜내고 있다.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독일관으로 세워진 파빌리온은
화려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았다.


유리와 대리석, 가늘고 단정한 기둥.
절제된 모든 요소가 주는 침묵과
장식 하나 없이 펼쳐진 공간의 힘은, 혁신이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한 시대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비워내야 하는지를 보여준 건축적 선언이었다.

형식이 사라진 자리에서 본질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보여주었다.


Architecture is the will
of an epoch translated into space.

건축은 시대의 의지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 미스 반 데어 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


2. 시대의 공허, 다가오는 전환


19세기말, 유럽은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낙관에 젖어 있었다.
예술과 기술은 찬란하게 빛났고,
도시는 미감과 질서로 장식되었다.


반면, 그 시대를 추월하지 못한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흐름을 뒤집기 시작한다.
유럽이 폐허를 수습하는 사이,
미국은 자본과 산업, 도시의 크기로 전면에 등장했다.


광란의 1920년대, 이른바 로어링 트웬티즈(Roaring Twenties)가 시작된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보여주듯, 겉은 화려했지만 그 속은 공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뉴욕엔 마천루가 솟아오르고,
전기와 엘리베이터, 강철 프레임, 대량 생산된 유리가 스카이라인을 빠르게 바꾸었다.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길들이 등장했지만,

당시의 건축은 익숙한 형식과 새로운 기술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철은 고딕의 구조를 지탱했고, 유리는 신고전주의의 틀 안에서 사용되었다.

시대는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고, 건축은 변화의 과정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건축 양식을 이상으로 삼아, 기둥과 페디먼트(pediment), 대칭 구조로 질서와 위엄, 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해 왔다.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 코린트양식의 기둥과 대칭구조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신고전주의가 “국가 정체성과 권위”를 표현하려 한 사례 출처:위키디피아


미국은 이러한 형식을 공공건축의 언어로 채택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의사당, 대법원, 도서관, 박물관 같은 건물들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는 불안한 시대에 안정과 권위를 드러내려는 시도였고, 동시에 유럽 문명을 참조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 과정이기도 했다.


뉴욕 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지붕의 페디먼트와 대칭구도, 기둥 등의 신고전주의양식 출처 : 위키디피아

3. Less is More, 비움으로 채워지는

파빌리온 내부전경. 대리석 벽과 바르셀로나 체어가 공간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덜어낸다는 것은 비움으로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다.

본질만 남은 파빌리온의 울림은 더 깊어졌다.


파빌리온 내부에 설치된 조각상. 빛과 대리석, 유리 벽이 함께 공간을 구성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God is in the details.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

- 미스 반데어 로에


4. 우리 안의 파빌리온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의 기준은 ‘얼마나 깊은 울림을 주는가’이다.


텅 비어있는 듯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오히려 엉켜 있는 마음의 복잡함을 발견케 한다.

마치 깨끗한 거울 앞에서 흠결이 더 도드라져 보이듯.


만족이 없는 줄 알면서 끝끝내 더 채우려는 마음,

그래도... 하면서 남과 비교하는 마음,

한 발짝 더 앞서 나가고자 애쓰는 마음,

불안이 두려움으로 변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마음...

복잡한 속에 것들이 투명한 벽 앞에서 고요히 멈춘다.


스스로를 가두고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그것을 비워낼 때 우리는 다시 자신과 마주한다.


좋은 음식이 따로 있듯

좋은 마음도 따로 있다.


파빌리온이 덜어냄을 통해 더하기를 얻었 듯

우리 마음도 비워낼 때 비로소 풍요로움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우리에겐 각자의 파빌리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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