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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Nov 15. 2020

7.  ETS 단골이 되다.

대기업 경력을 만능열쇠로 간주했다. 대기업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면 애니메트로닉스 분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3년의 경력과 영어 회화 능력을 겸비한다면 해외 특수효과 스튜디오에 취직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력서를 보여주기만 해도 합격할 것이라고 여겼다. 사회 경험이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현실을 알지 못하고 상아탑 속에서 계획을 세웠다. 목표를 로봇 제조와 연관된 대기업 입사로 잡았다.


그러기 위해 학점과 토익 성적이 필요했다. 학점은 복학 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토익은 방 안의 코끼리였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외면하였다. 복학 후 학점 관리에만 매달렸다. 영어는 고3을 끝으로 손을 놓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었다. 국영수 중에 영어는 자신 있었기에 무작정 토익 시험에 응시하였다.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느꼈다. 문제에서 쳐 놓은 함정에 속속 빠졌었다. 성적 확인 후 실체를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치른 시험에서 435점을 받았다. 100점이 만점인 시험에 익숙해서 인지 왠지 높은 점수로 보였다. 토익 800점 이상을 받으면 대기업 입사를 노려 볼만 했다. 400점 초반의 점수를 800점대로 올리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산을 오르기 전까지는 인고의 과정을 상상할 수 없다. 평지에서 그려보는 정상은 아름답기만 하다. 고통의 그림자는 아름다움의 빛에 감춰져 있다. 과정은 망각한 채 꼭대기만 생각하며 목표를 높게 잡았다.


전공 수업을 들으며 토익 공부를 병행할 수가 없었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어학연수를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또 한 번 발휘되었다. 이왕 토익 공부를 위해 휴학하기로 한 마당에 880점은 받아야겠다. 1년 안에 달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의 매월 토익 시험을 봤다. 시험 기관인 ETS (Educational Testing Service)의 단골이 되었다. 성적서를 받을 때마다 허황된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목표 점수를 받을 때까지 거의 매월 토익에 응시했다. 좌절감을 느끼기 위해 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것 같았다.


점수를 5~600점까지 올리는 것은 나름 할 만하였다. 600점대에 진입 후에는 점수가 도통 오르지 않았다. 한 달 동안 토익 공부에 매진하여도 오히려 점수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어학 자습실에서 듣기 연습을 하였다. 몇십 번을 반복해도 안 들리는 것은 안 들렸다. 화자는 지문대로 읽지 않는 거 같았다. LC (Listening Comprehension)는 많이 듣고 반복해야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귀는 있어도 들을 수 없었다. 언제쯤 제대로 들릴지 기약하기 어려웠다. RC (Reading Comprehension) 점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도 다녔다. 문법이 약하였다. 단어를 외우고 문제지를 풀고 주말에도 어학 자습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언어 공부는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실력의 향상은 현재 딛고 있는 곳에서 한 계단 올라서는 것이다. 각 단 너비(Unit run)나 단 높이(Unit rise)는 개인마다 다르다. 성적이 오르다가 정체되는 이유는 단 너비가 길거나 단 높이가 높은 경우이다. 긴 단 너비를 한참 걸어가야 한다. 다음 단으로 오를 수 있는 근력도 길러야 한다. 

https://unsplash.com/photos/bt-Sc22W-BE

Photo by Jake Hills

@jakehills


그래서 어학 성적은 어느 한순간 점프하는 것처럼 향상된다. 임계점에 오를 때까지 노력이 응축되어야 한다. 다음 단으로 뛰어오를 순간이 온다. 성적이 정체되더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성적 향상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휴학까지 한 마당에 토익 공부 외 다른 일에 매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에 대한 전략이나 노하우가 없어서 미련하게 공부했던 것 같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학연수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 연수를 다녀온 친구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다. 그래야 얄팍한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익만 파고들었다. 공부한 지 7개월 만에 700점대에 진입했다. 연말이 되어 830점을 받았다. 다음 해 1월에 치른 시험에서 805점을 받았다. 25점이 줄어들었다. 더 후퇴할지 몰라 두려웠다. 880점은 무리였나 보다. ETS의 상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온라인 시험성적 확인은 다음 월에 대한 시험 신청일 이후이다. 성적을 확인하기 전에 다음 달 응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휴학 마지막 달인 2월의 시험은 이미 신청을 했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직전 마지막 시험을 봤다. 온라인 성적확인을 위해 로그인할 때 긴장감에 손이 떨렸다. 점수가 화면에 나타나기까지의 그 몇 초가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915점을 받았다. 그 달은 ETS가 단골을 위해 시험 문제를 다소 쉽게 내줬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목표 달성을 하였다. 입사 지원 준비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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