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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Aug 07. 2022

[짧은 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격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다. 무서웠던 아버지다. 경상도 사나이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네 명의 자식을 키웠다. 단돈 50만 원으로 방 한 칸을 얻고 장사 밑천을 삼았다. 엄마는 회상한다. 수도와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네 명의 아기들을 키웠다. 추운 겨울에도 호스를 끌어와 천 기저귀를 빨았다. 수도꼭지에서 호스가 빠져 옷이 흠뻑 젖기 일쑤였다. 그래도 아기들 손에 흙먼지 묻힌 적이 없었다.
 
먼지는 아버지가 대신 뒤집어썼다. 장사를 하며 손이 깨끗한 날이 없었다. 저녁 식사 전에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체격이 좋으셨지만 한 치수 큰 옷을 입었다. 육체노동을 하더라도 셔츠에 말끔한 바지를 입었다. 남에게 업신 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힙합 바지를 입고 빗자루 마냥 거리를 청소하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옷차림의 중요성을 설파하셨다.
 
단칸방에서 이사 나갈 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집주인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일부 악덕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떼먹기 일쑤였다. 인터넷에서 대처 방안을 찾아볼 수 있었던 시대가 아니다. 법률 상담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다. 친척, 이웃, 동네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방법을 찾았다. 결국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당장 가족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상황이 배수의 진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만 바라보는 식솔들의 무게가 어깨에 지워졌을 것이다.
 
어떤 한 겨울에 온 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된 적이 있다. 다행히 증상은 경미했다. 아버지가 식초에 담근 휴지를 코밑에 올려 주셨다. 그래도 새벽녘 연탄을 가는 일은 계속되었다. 고단한 몸이지만 푹 잘 수 없었다. 번거로워도 냉골에서 잘 수는 없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자식들을 키웠다. 아빠와 엄마는 아기들 앞에 서서 세상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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