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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y 05. 2020

프롤로그 - 철인 28호와 쥬라기 공원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오른쪽으로 깊고 푸른 태평양이 보였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물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왼쪽으로는 캘리포니아 대평원이 보였다. 작은 산 하나 보이지 않는 평지의 연속이다. 밴쿠버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창 밖을 보았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면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도전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로봇 장난감을 사 주셨다. 철인 28호 프라모델이었다. 조립 설명서를 볼 줄 몰라서 고민했다. 설명에 맞게 부품을 끼워 맞출 수 없어 테이프로 팔과 다리를 이어 붙였다. 내가 만든 첫 번째 로봇은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았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거대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성장하며 꿈은 현실화되었다. 공학자가 되어 일어설 수도, 움직일 수도 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로봇 만드는 회사에 취직하는 게 우선 목표였다. 특수효과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경험을 쌓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틀어졌다. 근무를 희망하던 사업부는 로봇 청소기 생산을 중단하였다. 3년간의 경험을 쌓으려던 계획은 1여 년의 경험으로 조정되었다. 회사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제 직접 부딪히며 도전할 순간이다. 안전한 울타리 저 바깥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빗속에서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포효로 바뀌었다. 사파리 차량의 불빛은 티라노사우루스의 공격 본능을 일깨웠다. 차를 전복시키고 타이어를 물어뜯는 거대한 공룡이 은막을 장악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활약한 공룡들은 애니메트로닉스가 적용된 로봇이다. 로봇 공학, 기계 공학, 캐릭터 아트 등이 결합된 기술의 집합체다. 거대 로봇을 만들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은 영화 특수효과의 한 기법인 애니메트로닉스 기술자가 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고3이 되면서 대학 진로에 대한 고민은 지원할 대학교의 순위가 아니었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중 어느 분야가 로봇공학에 가까운지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로봇공학을 전공으로 개설한 대학은 없었다. 어린 시절 고장 난 가전제품을 분해하였다가 재조립하면 다시 작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격이었다. 조립식 라디오로 납땜 실력을 연마해본 적이 있었다.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전자공학이 내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했고 단기간 회사에 다녔다. 1여 년의 경력은 부족하지만 직접 부딪혀 보고 싶었다. 쥬라기 공원의 애니메트로닉스를 담당했던 특수효과 스튜디오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 국내에서 경험을 쌓으면 꿈의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그만두고 김포공항 인근의 한 스튜디오에 찾아갔다.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경비실에서 들여보내줄 리가 없었다. 여기에 취직하고 싶다는 말에 부재중이라는 대답만 듣고 돌아섰다.

세계의 곳곳에 있는 특수효과 스튜디오에 구직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단 한 통의 답장은 뉴질랜드에서 왔다. 정중하게 거절하는 내용의 답장일지라도 고맙게 느껴졌다. 용기가 생겼지만 할리우드는 에베레스트산처럼 느껴졌다. 특수효과의 본 고장에 등반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밴쿠버를 전진기지로 삼았다. 6개월의 준비기간은 힘들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터보프롭 항공기에 오르는 날을 기다리며 지냈다.

밴 나이즈는 로스앤젤레스 북서부에 위치해 있다. 끊임없이 구애를 보냈던 특수효과 스튜디오 앞에 서 있었다. 꿈에 그리던 장소 앞에서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나 자신이 보였다. 나의 목표와 대면한 순간 나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이력서의 경력은 부족했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내세울 수 있는 건 열정밖에 없었다. 일순간 현실을 자각했다. 구걸하는 모습이 투사되었다. 일자리에 대한 반대급부로 내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전문 경력을 쌓아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도전은 성공의 도전기로 귀결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영화계에 종사하는 후배를 통하여 일자리를 알아봤다. 운 좋게 한 군데에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최저시급보다 못한 임금을 제안받았다. 꿈을 좇으며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고시원 월세를 내고 라면을 사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일상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꿈을 접었다. 나의 첫 번째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허무함이 찾아왔다. 목표를 상실하고 방향을 잃어버렸다. 한국을 떠날 때 나의 도전이 실패하더라도 30대에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타격은 컸지만 도전의 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깊은 계곡의 바닥까지 내려갔었던 경험은 인생의 자산이 되었다. 일식당에서 설거지를 했었다. 생선 비린내를 풍기며 지하철을 탔다. 도매상에서 히스패닉 동료들과 티셔츠를 판매했었다. 값진 경험을 했다.

인생에서 순간순간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나의 도전에 대한 결정이 잘 된 것이었는지, 어떠한 결정을 내렸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올바른 결정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결정 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러한 행동이 잘한 결정과 잘못한 결정을 구분 짓기 때문이다. 도전을 감행키로 한 당신의 결정은 숭고하다. 안락하고 편안함의 경계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우리의 도전은 가치가 있다. 이제 당신을 믿고 도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기를 응원한다. 나는 목표를 찾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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