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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n 01. 2020

2. 철인 28호와 과학자 그리고 전자공학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과학자 중에서도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내 또래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봇이 나오는 만화 영화에 열광했다. 으레 로봇을 개발하는 과학자와 그것을 조종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악당을 물리치는 조종사보다 수염과 흰머리, 가운을 입고 로봇 개발에 매진하는 박사님을 동경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와 놀아 주실 때가 좋았다. 자영업을 하시며 틈틈이 놀아 주시곤 하셨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일이 바빠졌다. 그즈음 아버지는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장난감을 사 오셨다. 프라모델이었다. 철인 28호는 내가 조립한 첫 번째 로봇이다. 포장 상자를 열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프레임에 붙어 있는 파란색 몸통, 팔, 다리, 관절 등의 부품들이 있었고, 복잡하게만 보이는 조립 설명서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여쭙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날로 바빠지셨다. 그렇다고 설명서를 이해한 후 조립하는 것은 더욱 까마득한 일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철인 28호를 완성할 수 없었다. 고민의 날들이 지나갔다. 결국 집에 뒹굴고 있던 스카치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팔과 다리의 각 부분을 테이프로 이어 붙였다. 몸통과 머리는 테이프에 휘감겼다. 장난감 박스 앞면에 나와 있는 철인 28호의 모습과 비슷하게 조립을 끝마쳤다. 하지만 나의 로봇은 서 있을 수 없었다. 항상 누워 있어야 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내가 처음 조립한 로봇이 자랑스러웠다. 그때 무언가를 만듦에 있어 재미를 느꼈다. 만들기가 좋았다. 만화영화의 과학자가 된 거 같았다.


[철인 28호 프라모델]

출처 : staut의 블로그

http://m.blog.daum.net/kompang21/12


언젠가 어른이 되면 실제 로봇을 만들겠다는 꿈이 생겼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얘기할 때면 나의 대답은 항상 과학자였다. 제대로 된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과학반에 들어갔다. 조립식 장난감과 과학 상자 등에 빠져들었다. 고무동력기 글라이더를 만들었을 때는 라이트 형제가 된 거 같았다. 집에 고장 난 가전제품이 생길라 치면 드라이버를 집어 들었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막무가내로 분해하였다. 아버지로부터 영향도 받았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시다. 집에는 망치, 드라이버, 각종 철물 등이 담겨 있는 공구통이 있었다. 아버지는 고장 난 집기와 기계류를 직접 고치셨다.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고 닮고 싶었다. 나도 해보고 싶었다. 가전제품이 말썽을 일으키면 다짜고짜 나사를 풀고, 몸체를 열어보았다. 간혹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면 고쳐지기도 했다. 황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이었다. 물론 더 고장 내는 경우도 있었다. 운 좋게 수리에 성공하면 어머니는 칭찬을 하셨다. 이미 과학자가 된 것처럼 대우를 해주셨다.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만들기를 계속하였다. 그때 처음 접한 조립식 라디오는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납땜을 잘못하여 회로기판이 타버리기 일쑤였다. 완성 후 주파수를 잡기 위해 다이얼을 돌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제대로 된 라디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과학자의 꿈을 키워갔다.


언제부턴가 만들기와는 멀어졌다. 아마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부터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에 바로 매진하지는 않았었다. 대신 꿈을 구체화시켰다. 직업으로서 어떻게 과학자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공학을 전공하여 로봇 엔지니어가 되는 길이 현실적으로 보였다. 3학년에 진학하며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지원할 대학교의 순위가 아니었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놓고 고민했다. 어느 분야가 로봇공학에 가까운지 생각했다. 당시 로봇공학을 전공으로 개설한 대학은 없었다. 전자 공학을 전공하면 로봇의 차가운 몸뚱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배선으로 신경계를 만들고, 전자회로로 뇌를 구성하여 쇳덩이를 움직여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1년 동안 그 이전까지 해본 적 없었던 양의 공부를 했다. 늦었지만 3학년에 올라가며 절실함이 생겼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효력을 발휘했던 거 같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하고 원하던 전자공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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