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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Sep 02. 2020

3. 아웃사이더, 학사 경고를 받다.

고3 수험생으로서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정작 대학 진학 후 어떻게 캠퍼스 생활을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계획도 세워 놓은 게 없었다. 대학교 진학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는 낯설기만 했다. 안 하던 공부를 몰아서 하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대학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정해진 커리큘럼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강 과목을 직접 선택해 신청해야 했다.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하는지, 학점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수업에 결석하지 않도록 노력은 했었다. 술자리가 잦아졌다. 지각과 결석이 반복되었다. 1학기에 학사 경고 위기, 2학기에 학사 경고를 받았다. 군대가 유일한 탈출구였다. 또래들이 그랬던 것처럼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왔다.


복학 후 본격적으로 전공 공부를 시작하였다. 수학은 전공 공부의 필수이자 대부분을 차지했다. 공대생이 아닌 수학과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여러 과목 중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픈 두 개의 용어를 합쳐 놓은 멋진 과목이 있었다. 공업수학(Engineering Mathematics)이 그것이다. 공대생으로서 공업이라는 용어에 반감이 생기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엔지니어링의 번역이지만 왠지 구식처럼 느껴졌다. 미분방정식을 배웠다. 미분도 어려운데 그것을 방정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전자공학에 왜 이런 지식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3 때 배운 미적분은 1학년 동안의 허송세월과 2여 년의 군 생활로 내게는 잊힌 학문이 되어 있었다. 공업수학의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1학년에 개설되어 있는 미적분학 수업을 같이 들었다. 말 그대로 수학의 향연이었다. 간신히 수업을 따라갔지만 이과 쪽 적성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수학은 어려웠다. 문제풀이 원리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문제와 답을 외웠다. 그렇게 겨우 수업을 따라갔다. 공업수학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연습장 2~3장을 써야 했다. 간신히 푼 문제가 오답인 경우에는 책과 연습장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감정을 억누르며 문제 풀이 과정을 점검했다. 칙칙한 공대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좋아하는 과목도 있었다. 자동제어는 흥미로웠다. 이 과정을 배우고 나면 금방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수업을 들으며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아 차렸다. 로봇은 나오지도 않았다. 제어 시스템 이론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전자회로, 반도체 공학, 디지털 시스템 등 여러 전공과목 중 로봇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과목은 없었다. 로봇에 대한 지식을 쌓고 싶었다. 시간이 날 때 면 도서관 서고로 가서 로봇 관련 책들을 뒤적였다. 머리 아픈 이론이나 원리를 파고드는 학문은 재미가 없었다. 로봇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로봇 응용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심형래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영구와 공룡 쭈쭈가 쥬라기 공원의 개봉으로 흥행에 참패했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이지만 영화 특수 효과의 차이가 극명하였다. 쥬라기 공원의 컴퓨터 그래픽(CG)은 --그때 까지만 해도 영화 속 공룡들이 모두 CG인 줄 알았다-- 사실적으로 구현되었다.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회사를 찾아보았다. 스탠 윈스턴 스튜디오(Stan Winston Studio)가 그 주인공이었다. 나의 꿈 이자 목표가 되었던 스튜디오를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 특수효과에 매료되었다. 그 회사는 쥬라기 공원뿐만이 아니라 터미네이터, 프레데터, 에이리언 등 공상과학 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했었다. 특수 분장이나 애니메트로닉스(Animatronics) 기술로 촬영된 장면들은 컴퓨터 그래픽과는 다른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로봇 기술이 접목된 애니메트로닉스 분야에 빠져 들었다. 나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 애니메트로닉스 전문가를 목표로 삼았다.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다시 한번 되뇌었다. 꿈과 목표를 가져야 한다. 허황된 꿈은 없다. 꿈을 좇는 사람에게 꿈은 현실이다. 목표를 추구하며 구체화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꿈이 없다면 그런 가능성조차 날려버리는 것이다. 과정이 순탄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깊은 골짜기의 바닥을 걸어야 할 때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야 할 순간도 온다. 꿈은 산 정상의 일출처럼, 터널 끝자락의 광명처럼 어려움을 헤쳐 나갈 빛이 되어 준다. 꿈을 좇으며 바닥을 걸어본 경험과 터널의 어둠을 헤집은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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