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음의 바다 Jul 04. 2024

나는 짜장면이 좋아졌다

Olympic National Park, Washington



달리던 차를 멈췄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다. 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저 앞에 차들이 멈춘 것처럼 우리도 뒷따랐다. 반대편에서 차가 나올 때마다 서서히 앞으로 움직였다. 주차장에 들어가기 위한 행렬이었다. 그렇게 거북이걸음으로 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우리 차를 네모칸 하나에 밀어 넣을 때까지.


올림픽 국립공원에 있는 수많은 트레일 중 우리 가족은 호 우림(Hoh Rainforest)의 매혹적인 이끼의 전당(Hall of Mosses Trail) 길 위에 서 있었다. 비 오는 날 흙 위로 나온 지렁이처럼 우리는 기쁘지만 느릿느릿 움직였다. 토끼처럼 뛰어갈 수가 없었다.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서고 또 조금 가다가 돌아보게 되었다.


여긴 그런 곳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다가 우주 밖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곳. 중력이 약해지다가 내가 걷는 것인지 떠있는 것인지 몸의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곳. 시간과 공간, 모든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인간이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기묘하면서도 익숙하고, 낯설면서도 편안한.





연간 강수량이 3,300mm가 넘어 미국에서 가장 습한 지역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장마철 습기를 상상했으나 상쾌한 숲 속은 정반대였다. 여름철 최고 온도가 22도 정도라고 하니, 습도가 높아도 온도가 낮으면 이렇게 쾌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매년 여름 나에게 미움을 받아온 습도에게 미안해졌다.


이곳 온대우림(moderate rainforest)은 시트카 가문비나무, 서부 솔송나무와 같은 침엽수와 큰 잎 단풍나무 같은 낙엽수 모두 무성하게 자라 커다란 초록 우산을 쓰고 있는 듯한 빽빽한 숲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이끼와 양치류가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트레일의 이름을 독차지할 정도로 이끼의 자태는 압도적이었다. 키 큰 나무들은 너도 나도 어깨 위에 이끼 스카프를 살포시 얹어 팔 전체에 우아하게 두르고 있었다.


맑은 공기는 가벼웠고 간간이 불어오는 사람이 시원했다. 옛날 옛날에 비범한 공주나 왕자가 태어났다는 전설의 장소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신령함이 느껴졌다. 엄숙한 듯 성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 모습과 같을까. 원시림은 말이 없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비를 계속 맞으며 쑥쑥 자란 커다란 나무는 저 혼자 잘 살지 않고, 독특한 이끼와 초록 생명들이 살 곳을 제 몸에 만들어 주었다. 생명을 다해 쓰러진 나무조차도 다른 나무나 식물이 그 위에 살 수 있도록 영양을 주었다. 숲 속은 정의로웠다. 누구 하나 과하게 욕심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취하고, 가진 만큼 나누면서.


인간은 문명을 개척하고 물질적, 기술적 발전을 이룩해 왔다. 인간이 정녕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간 스스로 만든 온갖 재난과 공포는 전 세계적으로 끊이질 않고 있다. 원시적 생활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발전된 삶을 영위하게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서로를 파괴시키고 자연을 해치며 자멸의 길을 걷는 것일까.


치페와 원주민 부족의 선 베어(Sun Bear, Chippewa tribe)는 말했다. “문명의 척도는 콘크리트 건물이 얼마나 높은지에 결정되지 않는다. 그 속의 사람들이 주변 환경 및 인간과 얼마나 잘 관계를 맺었는지에 달려있다.” 서로를 바라보며 기꺼이 손 내밀어 줄 수 있고 따스히 품어줄 수 있는 세상. 원시림에 사는 나무와 이끼처럼, 서로에게 나무가 되어 주고 이끼가 되어 주는 미래를 상상했다.








나는 짜장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중국집 메뉴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음식이 미국에서는 왜 자꾸 생각이 나는 걸까. 몇 군데 가본 한식 레스토랑의 짜장면은 미국화된 다른 음식이었다. 내가 아는 맛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틀 전 우리는 워싱턴 주에 왔다. 참새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 같은 곳, H마트를 찾아갔다. 12시가 넘었고 배꼽시계는 정확히 알람을 울렸다. 우리는 꼬르륵 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자석이 끌어당기듯 푸드코트로 이끌려 갔다.


짜장면 한 젓가락 후루룩 먹는 순간, 머릿속에서 화려한 불꽃이 터지며 아름다운 빛깔의 잔해가 눈부시게 반짝였다. 음! 이 맛이었다. 반가운 나머지 나지막이 비명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었던 이 맛을 이토록 내가 찾아 헤맬 줄이야.


그날 먹은 짜장면은 어떻게 해서 내가 원하던 맛이 되었을까. 주방의 요리사가 내게 익숙한 맛의 레시피로 요리한 것일까. 아니면 나의 순수한 배고픔이었을까, 그리운 맛에 대한 열망의 절정이었을까,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안도였을까. 마트가 주는 친근한 분위기가 더했을까, 그날 나의 기분과 건강 상태가 보태었을까.


어느 한 가지 이유가 아니었다. 이 모든 요소가 적절히 버무려져 그날 그 맛이 태어났다. 나에게 미국에서 먹은 최고의 한국 짜장면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호 우림에서의 나의 하루는 그저께 먹은 짜장면 같은 맛이 났다. 주차 공간을 기다리며 공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배고팠다. 습도가 높은 상쾌함 속에 나의 소박한 상식의 벽을 허물며 짜릿했다. 난생처음 보는 모습의 이끼에게 반하는 순간, 달달했다. 태초의 시간을 거닐면서 그려본 미래 세계에 안도하고 싶어졌다.


오늘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나만의
최고의 맛은
그렇게
탄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과 바위 같은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