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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Sep 03. 2024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우주에서

Sandy Creek Covered Bridge
State Historic Site,
Hillsboro, MO



미주리를 가로로 관통하는 I-70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어김없이 설레었다. 연한 하늘색에서 짙은 파란색까지 하늘빛은 깊이가 있었고, 몽글거리는 새하얀 구름송이는 무리 지어 이동하는 철새들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 초록이 짙어지고, 곧게 뻗은 도로는 내 마음의 구김살도 다 펴줄 것처럼 반듯했다.


추울 때는 온기를 한 아름 끌어모아 우리 앞에 카펫처럼 펼쳐주는 햇살이 있고, 더울 때는 커다란 파라솔 같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구름이 있는, 무심한 듯 다정함이 묻어나는 이 길이 나는 마냥 좋았다.








I-70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와 함께 달렸던 그 많은 차들은 모두 어디론가 가버렸고, 태초의 시간 같은 자연 속에 우리 셋만 덩그러니 남았다. 키가 큰 나무들이 줄을 지어 초록잎을 커튼처럼 드리운 곳이었다. 그 아래 빨간 지붕을 덮어쓴 나무다리가 우아하게 서 있었다. 다리 끝에서 양 옆으로 이어지는 하얀색 나무 울타리와도 잘 어울렸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다는 듯 평화로웠다. 오후 3시에 그 어디서도 맡을 수 없는 싱싱한 공기가 아침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혀있었다.





나무로 만든 다리는 비와 태양에 약했다. 수명이 20년 정도밖에 안 되는 그들을 100년 이상 쓸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다리를 덮어서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만을 생각해 보면, 그저 네모 반듯하게 덮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집을 짓듯이 헛간을 세우듯이 정성스레 지붕을 올리고 환기창을 내고 예쁘게 페인트도 칠했다.


미국 전역으로 18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지붕 덮인 다리들은 정말 100년을 버티는지 확인이 되었을까. 1850년대 이후, 주철의 개발로 그들은 금속다리로 신속하게 대체되며 사라져 갔다. 지붕을 덮을 필요가 없어졌다. 2000년대까지 살아남은 다리는 0.1%도 안되었다.


1960년대 미주리 주정부는 남아있는 지붕 덮인 다리에 대한 보존 결정을 했고, 여기 샌디 크릭을 포함한 4개를 주립 사적지로 지정했다. 모두가 깊고 깊은 시골길을 따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 곁에서 묵묵히 다리의 역할을 다 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무관심의 방치는 희귀성이 되었고, 결국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오래전,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사실, 이야기의 중심에 그 다리가 있었다. 아이오와 주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로즈먼 다리(Roseman Covered Bridge)였다. 사진작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 다리를 찍기 위해 방문한 마을에서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를 처음 만났다.


4일간의 짧지만 강렬한 그들의 사랑은, 느리게 흘러가는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오래된 빨간색 다리의 목가적인 풍경과 대조적이면서도 묘하게 스며들어 어울렸다. 여생동안 가슴속에 꾹꾹 눌러 묻어둔 애절한 그리움으로, 그들은 죽어서 한 줌의 재가 되어서야 다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 속 로즈먼 다리 (출처 : imdb.com)
현재 로즈먼 다리 (출처 : exploremadisoncounty.com)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1995년 개봉했고, 2017년에 재개봉했다. 동명의 뮤지컬은 2017년 초연, 2018년 재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원작소설도 1993년 시공사에서 출판한 이래 계속 읽히고 있다. ‘세기의 로맨스’라는 극찬과 ‘불륜의 미화’라는 비난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어느 쪽이 맞다, 아니다 라고 단정 짓기에,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잔뜩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이해가 안 되고 복잡하며 혼란스러운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은, 원주율이 영원히 끝나지 않듯이 명쾌하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예정된 것이 아니고 알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신비함은 순수하고 절대적이란 것을 깨달았다.” - 프란체스카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 로버트








다리 안은 동굴 같기도 터널 같기도 했다. 나무의 축축하면서 서늘한 냄새가 났다. 딸아이의 웃음소리와 우리의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해먹 속에 몸이 포옥 감싸 들어가듯 아늑했다. 밖에 있으나 동시에 안에 있는 느낌이 오묘했다.


비와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지붕 아래,  환한 대낮에 한 발자국 차이로 어두운 밤이 되는 곳이었다. 누구든 심장이 간질거리는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내 남편이 오늘 아침보다 1.258739배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걸 보면 말이다.


실제로, 이런 지붕 덮인 다리를 “kissing bridge”라고 불렀다고 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속 그들의 운명적인 끌림은 로즈먼 다리가 만들어 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다리는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모든 것이었다. (영화의 원작인 동명 소설을 쓴 작가, 로버트 제임스 윌러는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 마을에서 본 로즈먼 다리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고 11일 만에 원고를 완성했다.)








다리의 뒷모습은 앞과 똑같았다. 주변에 서 있는 키 큰 나무의 풍성한 잎사귀 커튼과 양팔 벌린 새하얀 나무 울타리까지. 앞뒤가 같은 모습은 성품이 단정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지붕 덮인 다리를 지키는 일은 결국, 다리 위에 집을 짓듯 살뜰히 애정을 담았던 옛날 사람들의 올곧은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 정직함 속에서 순수하게 피어나는, 시대를 초월하며 은은한 초승달 같이 빛이 나는 사랑이 어딘가에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나무는 초록빛 냄새가 났고,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다리 아래로,

세월의 물결 속에서
무수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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