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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Sep 17. 2024

This is me

Elephant Rocks State Park,
Belleview, MO



뜬금없었다. 트레일을 걷는데 난데없이 웅장한 바위산이 나타났다. 바위를 보러 오긴 했지만 이런 종류의 첫인상은 상상하지 못했다. 식탁 위에 머그잔을 놓듯이, 평지 위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 놓은 듯했다. 트레일은 바위산을 감싸며 둘레길처럼 이어져 있었다. 저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트레일이 아닌 바위산 위에.


우리는 자석에 이끌리는 철제 못처럼 강력한 끌어당김을 느꼈다. 뾰죡한 부분이 없이 둥글둥글해서 완만한 바위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산을 처음 볼 때부터 이미 심장은 몸 밖으로 탈출한 듯 박동소리가 강렬해진 상태였다. 왠지 모를 기대와 흥분으로 몸속의 트랙을 나의 피가 격렬히 질주하고 있었다.


정해진 길이 없었다. 그 어떤 인위적인 조형물도 없었다. 난간이라던지 로프라던지 계단이라던지 표지판이라던지. 우리는 이 돌산을 오르는 길을 수백 수천 가지도 만들 수가 있었다. 정해지지 않은 길 위에서, 따라가야 하는 길이 없는 곳에서, 나는 숨통이 트이는 자유를 느꼈다.





어느 정도 올라갔을까. 7월의 햇살이 만든 땀을 닦아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무엇하나 걸릴 것 없이 탁 트인 하늘과 빽빽한 초록 숲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붉은빛(또는 핑크빛) 바위들이 나는 진작에 맘에 들었다. 갈라진 틈 사이를 비집고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고, 키 낮은 연둣빛 풀들은 잔디처럼 보송했다. 바위들은 경기장의 야구 선수들같이 각자 정해진 위치가 있는 듯 자연스러웠다. 오늘따라 하늘을 가득 채운 뭉게구름은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중처럼 마냥 해맑았다.

누가 올려놓은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굴러온 것도 아니었다. 약 14억 년 전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섞인,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였다. 긴긴 시간 동안 부드러움은 비와 바람에 깎이며 다듬어졌고, 단단함이 남아 동굴하거나 넓적하거나 통통하거나 길쭉한 각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비와 바람은, 물과 공기는, 헤어 디자이너처럼 그렇게 바위를 손질하고 매만지는 중이었다.





통통한 감자처럼 뭉텅하게 생긴 큰 바위들이 마치 이곳이 그들의 마을인 듯 바위산 위에 모여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몇몇의 아이들이 보였다. 바위 위를 오르고 있거나 이미 올라갔거나 아님 오를 예정이거나. 어릴 적 학교 놀이터에 있던 알록달록 정글짐이 생각났다. 매 움직임마다 끊임없는 선택으로 길을 만들어 올라가는 짜릿함이 아이들에게서 느껴졌다. 꽤 높은 바위에 올라가 있는 어떤 아이는 매의 눈빛으로 다음 탐험 장소를 물색하는 듯했다. 허리춤에 두 팔을 올린 채 사뭇 진지하게.


큰 바위들이 더 밀집되어 있는 곳은 그 사이를 걷는 길이 미로였다. 조금만 옆으로 빠져도 바위에 가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어디든 입구나 출구나 비상구가 될 수 있는 미로. 뻥 뚫린 하늘 아래, 바위숲 사이로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서로를 쫓아가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곳은 인공의 미끄럼틀 하나 없이 자연이 만든 최고의 놀이터였다.


이 지역의 지질자원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연구원처럼 사명감과 호기심이 가득 차 있는 나의 딸이 내 옆에 있었다.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는 적당한 바위를 골라 지체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적당한 바위라는 게, 슬쩍 봐도 높이가 2m는 넘어 보였다. 남편이 도와주긴 했으나 그녀는 대체로 손쉽게 올라갔다. 육중하지만 근육이 살아있는 남편도 연이어 잘 올라갔다. 이제 내 차례인가. 내 차례여만 하는가. 마지못해 따라 나온, 연구원의 조수처럼 난 잠시 고민했다. 새로운 경험과 익숙한 두려움 사이에서.


여기서 망설이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활짝 핀 꽃 같은 미소의 얼굴로 딸아이는 어서 오라며 나의 결심을 재촉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이 고른 두 번째 바위 위에 있었다. 나는 대범한 척, 내가 아닌 척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심호흡을 한 뒤, 바위 표면에 갈라진 틈이나 튀어나온 모서리를 찾아 손으로 잡고 발을 디뎌 천천히 바위에 달라붙어서 올라갔다. 자벌레가 몸뚱이를 밀어 올려서 움직이듯 1시간 같은 3분이 지나갔다.


바위 위는 아래와 공기 차이가 컸다. 아찔해서 서늘한 기운마저 들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내 몸을 밀어낼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다. 퍼진 계란 프라이처럼 바위 위에 몸을 납작 붙였다. 누운 것도 아니고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난간 하나 없이 높다란 바위 위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반듯하게 서 있는다는 것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졌다. 나의 손과 발에는 긴장으로 뜨뜻미지근한 촉촉함이 느껴졌다.


내가 3분 전에 서 있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아득하고 아련했다. 정글짐에서 열정 태우던 십 대 소녀의 용맹함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나이 먹는 것과 비례하여 고소공포가 늘어나는 씁쓸함을 애써 외면한 채 하늘을 줄곧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나를 빨아 들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눈앞이 어른거렸다. 입체영화를 볼 때처럼, 딸아이는 하늘에 닿을 듯 가까워진 구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 줄기 깃털 같은 바람에 나의 쌉싸름한 두려움을 날려 보내려 했으나 무거웠는지 날아가다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심장이 쪼그라든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내 등에 업었다. 다시 거대 자벌레가 되어 내려가야 했다. 남편이 먼저 내려가서 날 받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닥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하늘다람쥐 같이 두 팔 쫙 펼치고 그의 품으로 날아갔다. 무사히 착지한 뒤에야, 나는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터덜터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의 딸이 박수를 쳤고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내가 찍은 바위 사진은 크기가 가늠이 되질 않는데
사실 이만큼 거대하다. (출처: mostateparks.com)



이곳의 수많은 거대 암석들은 마치 서커스 코끼리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코끼리 바위’로 불렸다.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 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바넘(P.T. Barnum)은 ‘점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데리고 쇼를 하기 시작했다. 1882년 이 거대한 코끼리는 미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바넘의 쇼 티켓은 불티나게 팔렸다. 그렇게 코끼리는(특히 점보는) 서커스의 스타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동물 권리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코끼리는 2017년을 마지막으로 미국 서커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코끼리 바위는 계속해서 이곳 주립공원의 영원한 스타였다.



1882년 점보 서커스 포스터 (출처 : wikipedia.org)



우리는 코끼리 바위들을 헤집고 나오면서 실제로 볼더링(bouldering, 암벽 등반의 한 종류로 로프 등의 장비 없이 맨몸으로 바위(boulder)를 오르는 것)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거대한 바위의 한쪽 벽면이었다. 어떤 종류의 운동이든 태양만큼 거리가 먼 내가 더듬어 올라갔던 그런 바위와 차원이 달랐다. 내 마음은 오늘 내가 한 행위를 볼더링이라고 나 스스로 치하하고 싶었으나, 사실 아이들의 놀이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This Is Me.



<위대한 쇼맨> 출연자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출처 : vogue.com)



영화 <위대한 쇼맨>의 노래가사처럼, 그럼에도 이게 바로 나였다. 운동신경이 둔하고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만, 이게 나였다. 오늘의 당혹스러움이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나였다. 누가 뭐래도 이것이 나의 용기였고 이런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나였다.


딸아이는 오늘의 지질 탐험으로 코끼리 바위만큼 커다란 추억을 만들었다며 좋아했다. 나 또한 즐거웠다고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나지막이 “This is me”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내 안에 코끼리 바위만큼 단단해진 자존감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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