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티치 하나

하얀 창문의 여름

by 맑음의 바다



Watkins Woolen Mill State Park
Missouri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이 내 발걸음마다 삐걱거린다. 책상을 다 물리고 하얀 왁스칠하며 닦았던 나의 초등학교 교실 바닥이 이랬을까. 1860년부터 양모에서 실을 뽑아내며 바쁘게 돌아가던 공장은 고요한 시간 속에 멈춰있다. 기계소리가 어디선가 날 것만 같은 빨간 벽돌 건물 안에서 양모 담요 같은 온기가 품어 나온다. 후끈한 스팀 냄새가 배어있는 오래된 공간 속에서 기억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80 에이커 목장으로 시작한 월터스 L. 왓킨스(Waltus L. Watkins). 그는 이를 점차 확장해, 약 3,660 에이커(뉴욕 센트럴파크의 약 4.3배)에 달하는 공간에서 대규모 농장과 방적 공장을 일구었다. 양뿐만 아니라 말, 소, 돼지 등 다양한 가축을 기르고 과수원을 운영했다. 학교, 교회, 대장간, 제재소 등이 연이어 들어섰다. 자그마한 목장은 그렇게 하나의 마을로 자라났다.


스팀엔진이 기계를 바쁘게 돌리던 시절은 기계식 방적산업의 전성기였다. 더 거대한 대량생산 체제와 기성복 시장이 혜성처럼 등장했고, 가랑비에 바지 젖듯이 공장은 서서히 멈춰갔다. 왓킨스 사망 이후 쇠퇴기를 지나던 어느 순간, 스팀 열기는 완전히 식었다.


기계의 톱니바퀴는, 그럼에도 한 번도 소홀히 버려지지 않았다. 기계, 장부, 작업대, 벨트 시스템까지 고스란히. 농장에 남겨진 가족에게 공장 구석구석은 어떤 의미였을까. 세상의 흐름에서 비껴 났지만 끝내 지키고 싶었던, 하나의 꿈같은 것이었을까.





낡은 기계들이 멈춰 선 공장을, 찬찬히 둘러보며 청소하고 보수했던 다정한 손길을 느낀다. 전시된 유산 하나하나로부터 그 포근한 마음을 엿본다.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그들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19세기 섬유공장이 타임캡슐 속에서 갓 나온 듯 21세기에 살아있다. 시간을 담은 생생함이,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외할머니의 미소처럼 아련하게 피어난다.


드넓은 초원을 아이와 뛰어간다. 잡기 놀이를 하다가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서서, 새초롬한 여름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빨간 벽돌 공장 뒷모습이 보인다. 예쁘게 꽃단장한 얼굴보다 묵묵히 세월을 지고 있는 단단한 등이 애틋하다. 잊혀 가는 대중목욕탕 굴뚝이 여기에 겹치는 순간, 나는 초록 풀밭 위에서 기억 속을 헤맨다. 160년의 시간을 반사하는 가지런한 창문이,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서, 눈에 아린다.








입구에서부터 딸아이와 남편이 간절히 찾던 기념품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방문자 센터 한쪽에 몇 가지 기념품이 소박하게 진열된 걸 확인하고, 둘 다 안도하며 표정이 밝아진다. 주립공원 직원이 천사 같은 미소로 우리를 바라본다. 남편은 보석을 발견한 듯 패치를 조심스레 집어 들고는, 내 눈치를 살핀다. 모른 척 딴청을 부리자, 슬그머니 다가와 속삭인다.


“이거 한 가지밖에 없어. 근데 너-무 맘에 들어.“


사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 사고 싶다고 말하는 재주를 부린다. 패치 하나를 가슴에 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아이도 덩달아 무언가 사고 싶어 진열대 앞을 기웃거린다. 나는 속으로 외친다. ‘누가 이 아저씨 좀 말려주세요!’





빨간 벽돌 공장에 새하얀 테두리 창문이 단정하게 수놓아져 있다. 실 몇 가닥만으로, 공간과 냄새가 스며든 시간이 자그마한 패치 안에 담긴다. 네모난 유리창은 광활한 하늘을 가득 담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패치 안 하얀 창문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