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플라스틱 재활용을 더 섬세하게 해야 한다. 겉면에 붙은 라벨지도 떼야하고 안에 남아있는 내용물도 제거해줘야 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대부분은 잘 안 한다. 그렇게 버린 플라스틱은 재활용 업체에서 수거해서 똑같이 라벨지를 떼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세척한다.
다 쓴 로션통을 재활용하기 위해서 따뜻한 물을 받았다. 아무리 바닥까지 로션을 긁어내더라도 벽면에 붙어있는 로션이 있게 마련이다. 그 잔여물들을 깨끗하게 닦아낸 후 통이 뽀드득한 느낌이 좋아서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내려고 따뜻한 물을 받은 후 막 흔들었다. 물이 따뜻할수록 기름 성분인 로션들이 잘 녹아 나온다. 샤워기 수압을 최대로 해서 따뜻한 물을 받아서 로션통 안쪽에 남아있는 로션들을 닦아내려 했는데 생각만큼 잘 닦이지는 않았다. 몇 분을 낑낑대며 로션통을 닦으려고 하다가 문득 남아있는 로션들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날 한 시에 만들어져 한 통속에서 부대끼고 살았는데 먼저 나간 로션은 제 목적을 달성하고 남아 있는 로션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함만 주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만약 로션에게 감정이 있다면 잔여물을 어떻게든 깨끗하게 없애버리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제 목적을 달성하고 사라지는 것과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을까...
통 속에 남은 로션이 씻겨나가지 않고 어떻게든 버티려는 모습이 지금 내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