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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암환자 Nov 19. 2022

암환자면 연애도 못하게 될까요?

암환자라서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아, 내가 찬건가.

"결혼은 못할 것 같아."


나와 연인이 된지 2주 정도가 지났을 시점부터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너랑 결혼하고 싶어." 라는 말이 어느순간부터 사라졌다.


늘 안정적인 가정, 평화로운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던, 그게 인생의 정말 큰 꿈이고 목표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연인이 된지 약 반년 쯤 지났을 때 나는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연애를 할 때에는 늘 '결혼'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결혼을 할만한 사람인가, 내가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배우자일까를 생각하고 연애를 했던 내가 처음으로 조금 더 가볍게 시작했던 연애였다. 너무 기대가 컸던 연애는 그만큼 큰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으니까. 기대를 최대한 접어두고 시작한 연애, 내가 너무 좋다고 시작부터 표현이 많았던 사람과 시작한 연애는 조금 더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나 스스로도 사랑 표현을 참 좋아하고 많이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네가 참 좋다고, 너의 이런 점이 너무 매력이 있다고, 늘 나의 좋은 점을 말하는 사람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늘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이라 더 그랬을까.


29살의 크리스마스를 몇 일 남기지 않고 암 진단을 받았던 그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는 참 많이 울었다. 전화 너머로 너무 서럽게 우는 그 사람이 그 때는 암에 걸린 나보다 더 안쓰러워보일만큼.


나는 암을 진단받았다고 해서 연인관계를 이제 그만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의 경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은 있었지만 죽음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지 '아... 나 이제 죽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민정아, 너 남자친구에게 끝내자고 해야하지 않겠니? 그분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인데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내가 '암환자라서 연애를 못할 수도 있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건 순전히 암을 진단받은 후 들은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자아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20대 초반부터 6년이란 시간을 영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걸까.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내가 왜?" 였다.


왜 내가 헤어져야 하는지, 그 말을 먼저 꺼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딸인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냐며 엄마에게 소리를 치기까지 했다. 엄마의 말이 나는 참 많이 서운했다.


"그분의 부모님이 많이 신경쓰이고 안 좋아하실 수 있으니까 그래."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 부모님의 의견 ]의 중요함.

2년만에 한국에서 또 한번 느끼는 컬쳐쇼크(문화충격)였다.


6년동안 영국에서 지내면서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몸이 아픈 사람도 있었고,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해서 약을 먹어가며 치료를 받는 지인도 있었다.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하는 친구도 있었고, 우울증이 심해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이해가 좀 더 필요한 분도 있었다. 내 옆에는 좋은 사람만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희귀한 질환이나 암을 진단받은 사람들의 옆에는 늘 자신이 선택해서, 그들이 꼭 좋아졌으면 좋겠어서, 남은 날들이 얼마나인지는 모르지만 꼭 그사람들의 인생에 함께하고 싶어서 그들의 옆에 있는 파트너가 있었다. 늘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부모님은 그런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아픈 사람이 내 가족의 범위에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함께했다. 아픈 사람의 병이 집안의 유전으로 생길 수 있다는 걱정을 먼저 하지도 않았고, 그 두사람만 행복하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을 봤던 내가 그냥 운이 좋았던 사람인걸까.

영국에서 이런 모습을 더 자주 봐온 나는 내가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부모님의 의견보다 나 자신의 기준, 나의 선택, 그 선택으로 책임지고 대처해야 할 것들에 대한 것들이 명확한 것, 그리고 사람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일주일정도를 고민하다 만나고 있던 그분에게 물어봤다.

"오빠, 나랑 헤어질래?"


"아니. 나는 너랑 끝까지 함께하고 싶어."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너와 결혼은 하지 못하겠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료계에 종사하던 그분은 늘 아픈 환자들과 마주하기 때문인지 내가 암을 진단받고 난 후 내가 금방이라도 잘못될 수 있는 사람처럼 말을 하고 행동했다. 알고서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끝'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을 자꾸 했다.


나는 나의 끝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나는 '지속'이라는 말과 '계속'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이제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그가 입에서 내뱉는 말들이 참 달갑지 않았다. "왜 자꾸 내가 죽을거라고 생각해?"라는 질문도 하면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만나던 그 분의 입에서 더이상 "나랑 결혼해줘"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된 건 암 치료가 시작되고 나서 2달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평소 사람들의 말, 행동,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많고 그에 대한 교육을 업으로 삼던 나에게는 그런 변화가 참 크게 다가왔다.


대놓고 물어봤다.

"오빠, 왜 이제 나한테 결혼하자고 안해? 내가 아파서 그래?"


"아... 사실..."

그분은 어머니가 나의 암 진단 소식에 무척이나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시면서도 집에 암 진단받은 사람이 있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을 했다. 어렸을 때 집안에 암을 진단받고 결국 돌아가신 분이 계셔서 그런 거라고. 그 분의 배우자가 아들과 함께 세상에 혼자 남겨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 맘이 안좋았다고, 어렸을 때부터 다 좋은데 암 걸린 사람만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내 엄마에게 어릴적부터 들었던 말은 "남한테 의지하기보다 너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라. 그러니 능력을 키워라." 였는데.


내가 너무 좋아서 죽고 못살것만 같았던 사람이 부모님의 의견으로 이렇게 말과 행동이 변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아팠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자는 연애도 못하나?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의 기준보다 부모님의 의견이 중요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의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사실 밉지도 않다. 다만, 그분의 어머니가 그분에게 '암환자는 안된다'라는 말을 할 수는 있어도 그 분이 나에게 그 말을 전하면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뿐이다.


결국 '엄마가 너 암환자라서 결혼은 안된대.'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차라리 나에게 어머니의 생각을 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면 그 말이 덜 뾰족하게 들렸을까.







"차라리 나에게 결혼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해줘. 제발..."



어머니가 그 말을 하셨다는 것을 전해듣고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그 분이 나를 너무 좋아하지만 부모님의 의견이 큰 부분을 차지해서 늘 고민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헤어지자."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을 인생의 큰 목표로 삼던, 그래서 나에게 헤어짐을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그분에게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


그 분은 울면서 차라리 자신에게 결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결혼을 꼭 할 필요는 없다고 설득해달라고 말했다.


"나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함께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을건데. 나는 그 말 못해."


내 말에 그분은 또 울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안녕, 나는 암환자고 현재 암 치료중이야. 그래도 내가 좋아? 다시한번 생각해봐.


그렇게 헤어진 이후로 나는 그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내가 연애를 하게 되면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암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말해야겠구나.’


그런데 과연 “그게 뭐 어때서? 그래도 나는 너가 좋아.” 라고 말을 할 사람이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고 “그럼 나는 너랑 못 사귀겠다.”라고 말하면 … 그럼 나는 괜찮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내 자신이 너무 웃겨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대단하다, 김민정. 암 걸려도 연애를 쉴 생각은 안하는구나. 정말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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