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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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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Sep 09. 2022

탈(脫)인간의 시대

오다 에이이치로의 역작 「원피스」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Dr. 히루루크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그는 답한다, 인간은 사람들에게 잊혔을 때 죽는다고. 나는 여기에 또 다른 사인(死因)을 추가하려 한다. 사람은 그 존재가 우스워졌을 때 죽는다.     


  시대는 강철을 늘여 대지를 철도로 묶고, 끓는 아스팔트로 길들을 매듭지었지만, 음유시인의 현은 끊어버렸다. 바다를 덮는 다리가 놓이고, 구름을 내려다보는 건물들이 세워졌지만, 인간과 인간을 잇던 연대와 영혼의 아치는 무너졌다. 바야흐로 인간이 우스운 시대가 도래했다. 비트코인 유행이 한창일 때 나는 친구들의 영혼이 숫자 속으로 용해되는 것을 보았다. 주식의 그래프가 x축 위에서 이륙할 때는 폐에 헬륨가스를 가득 채우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도 덩달아 떠올랐다. 반대로 그래프가 내리막길로 구를 때는 절망의 납을 매고 삶의 수렁 속으로 가라앉았다. 숫자놀음 앞에서 그들 영혼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웠다.      


  존재를 덮고 있는 영혼의 대기 중에서 이상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꿈이나 이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어색해한다. 그러한 주제가 나오기만 하면 높은 고도의 희박한 산소를 들이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숨을 헐떡 거린다.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면 진지충이라 비아냥을 듣기 일쑤이니 대화는 점점 피상의 상태로 말라갈 수밖에 없다.      


  공장은 인간의 죽음을 계산한다. 설비 개선 비용과 노동자의 사망으로 발생할 비용을 저울 따위에 올린다. 기업들이 환경을 파괴해도, 윤리보다 이윤을 앞세워도 사람들은 기업은 원래 그런 곳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비정한 사회론의 신봉자다. 사회의 비정과 냉철은 자연법칙과 같아서 인간이 거기에 따르는 것은 불가항력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불가항력은 그들의 상처인 동시에 굴종의 비루함을 가리는 천막이다. 그들에게도 분명 선택지는 주어졌었을 것이다. 손해 보더라도 인간다운, 느리더라도 올곧은, 무모하더라도 정의로운 길이 과거의 어느 길목에 있었을 것이다.     


  순환하는 계절의 바퀴가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다. 신의 후광에서 벗어나 인간의 열기 속으로 뛰어들었던 문명의 계절이 이제는 인간마저 벗어나 탈(脫)인간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문명은 더 이상 인간을 사유하지 않는다. 이제 그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자본이기 때문이다. 위대함의 젖줄기였던 인간의 가슴은 말라버렸고, 마천루와 기계들이 그 근원을 대체했다. 가슴을 가진 것들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인간이 우스워진 이 시대에 과연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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