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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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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Sep 12. 2022

시간의 탄성과 부동의 고치

어제 새해의 개막식이 있었고, 오늘은 창가에 가을이 찾아왔다. 중간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흐릿한 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몇 번 감았다가 떴더니 햇빛도 녹는 여름이었다. 이놈의 장마는 언제 끝나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어느새 가을이 됐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에 상대성을 부여했다면 나는 거기에 탄성을 부여하겠다. 시간은 24개의 관절을 가지고 있어서 잡고 늘리면 한없이 길어지다가도, ‘아차!’하고 정신줄을 놓는 순간 번개와 같은 수축으로 365개의 지점을 순식간에 돌파해 버린다. 이것이 한 해가 지나는 원리인 동시에 나이를 먹는 것의 물리적 해석이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올해의 수축은 특히나 치명적이어서 튕긴 고무줄에 맞은 것처럼 가슴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이렇듯 시간은 도통 그 속도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마음의 속도가 몸의 속도를 따라가지를 못한다.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게 계절만은 아니었다. 우선 몸이 바뀌었다.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원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감기의 방문 횟수가 늘어났다. 베개 위에 흩어진 머리카락들을 봤을 때는 경기를 일으켰다. 부랴부랴 탈모샴푸와 약을 사서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재앙에 대비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이제는 어른이란다. 사람들이 말하는 어른이라는 게 일정한 나이를 말하는 것인지, 어떠한 인격적 수준을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지가 않아 다소 정의가 모호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지지한다. 하지만 정의에 모호함과는 별개로 언어에는 힘이 있어서 일상에 변화를 발생시키고 있다. 비속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원래도 많이 쓰던 편은 아니었지만,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도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한다. 청약과 적금을 시작했다. 매달 나가는 돈이 버겁기는 해도 어떻게든 유지해보려 한다. 조금씩 형태는 달라도 결국에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다. 제 앞가림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변하는 게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변화무쌍한 계절도 낮과 밤을 부동의 축으로 삼아 순환한다. 인간에게도 그러한 축이, 부식되지 않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인간의 심장. 천진한 유년기에도, 피 끓는 청년기에도, 황혼의 노년기에도 심장은 붉다. 그러니 마음 또한 불변의 붉은색을 따라, 겨울의 제일가는 과실인 모닥불처럼 사람의 마음을 녹여야 한다. 비를 기원하던 고대인의 기도로부터 집마다 강철 오아시스가 놓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생이 길을 걷는 것는 것임에 변함이 없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매한가지. 이상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꿈에 취한 몽상가처럼 갈지자로, 그러나 멈춤 없이, 믿음이 가리키는 길로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인간이 경계해야 할 것은 거친 황야가 아니다. 인적이 끊긴 비탈도 걷다 보면 길이 된다. 인간이 진실로 멀리해야 할 것은 시류다. 시류는 자아의 의탁이다. 자아의 의탁은 자신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해조류의 삶이다. 그는 밀리고, 쓸리며 쉬지 않고 요동치지만, 그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은 조수의 의지일 뿐 그의 삶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란 부동의 고치 속에서 일어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확고부동(確固不動),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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