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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당 초보 사장의 일기

-아무도 모르게 쌓아 올린 경험의 시간

“오늘도 문을 열었습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매일 아침, 나는 언제나처럼 최선을 택한다

중식당 인수 후 한 달이 다 되어갈 때까지도 매장의 공기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기름에 절은 바닥, 테이블의 묵은 때를 밀어내며 수세미 자국 하나에도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홀청소에만 집중했다. 차곡차곡 쌓인 기름기가 눌어붙은 테이블을 퐁퐁과 기름기 제거제를 섞어 수세미로 박박 닦아내고 있었다. 청소 중인 나를 주방 직원들이 바라보며 "사장님, 중국집 중에 우리 집은 호텔에 가까워요. 닳아 없어지겠네. 그만하세요.." 직원들의 청결에 대한 안일한 태도에 한숨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의 묵은 때를 벗겨 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바쁜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나마 잠시 쉬는 시간에 몸을 움직이다 보니 일주일 정도면 끝나겠지 하던 매장 청소는 어느덧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주방 벽면과 냉장고들의 비위생적인 묵은 때들이 눈엣 가시처럼 매일 시선을 붙잡고 았었다.


더 이상은 미뤄 둘 수 없어 주방 식구들이 모두 퇴근한 후, 늦은 밤 혼자서 청소를 시작했다. 식기부터 정리하고, 오래된 웍은 체크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다음날 조리하는데 문제없도록 주방업체에 주문 문자를 넣었다. 그 동안 주방 직원들의 대충대충 청소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오래된 기름때가 눌어붙은 가스레인지 주변과 주방 바닥 하수구 구멍들의 묵은 때를 파내고 물청소까지 하고 나니 새벽 3시가 다 되었다. 말없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내가 주인이 된 이 공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기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남모르게 우렁각시처럼 청소를 끝내고 문을 나서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은 땀 냄새로 절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조용했다. 하루를 또 견뎠다는 느낌이, 내가 내 자리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경험을 쌓고 있다’는 위안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주방 사람들의 투덜대는 말투, 텅 빈 홀에 앉아있는 동안의 고요한 긴장, 배달 기사님들과 오가는 짧은 대화들 속에서도 나는 ‘중식당은 처음인데’라는 단어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정한 방식으로 이 공간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가끔은 청소를 하며 손보다 마음이 더 닳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땀을 닦다 말고 문득,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 걸까?'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을까?'

그런 질문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돌아볼 틈을 주지 않고 더 강하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 자신이 나락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을 보내며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도전하여 선택한 이곳 , 동경 중화요리!!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주방 실장은 4번째 바뀌었다. 주방 인력과 홀 직원들의 이직률도 꽤나 높다. 인수 전, 사장이던 후배와 나누던 대화를 가끔 생각한다. "누나, 중식당 이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돈은 벌지 몰라도 사람 때문에 정말 힘들어요. 나도 그래서 그만두는 거잖아요.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세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래 하다 보면 그럭저럭 잘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첫 마음을 기억하자.. 처음부터 잘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한다.
'계속할 수 있을까?'
'난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선택, 잘한 것일까?

그리고 매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오래 하다 보면 그럭저럭 하게 될 거야.'


그렇게 하루하루 문을 연다는 건,
나에게 살아보겠다는 마음이고,
견뎌보겠다는 다짐이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최선의 인사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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