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을로우 Oct 26. 2023

아까운 무

제주 동쪽은 바람이 세고 기후가 안 좋아 농사가 힘들다고 한다.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주렁주렁 귤이 달린 귤나무 밭들은 동쪽을 빠져나와야 만날 수 있지만, 대신 제주 동쪽의 가을은 당근과 무의 잎들로 푸릇푸릇하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밭은 가장 바삐 움직인다.

내가 살고 있는 종달리도 사람이 다니는 길 이외의 땅들은 대부분 당근밭 아니면 무밭이다.

종달리 입구에 무 세척공장이 여러 집 있고, 육지로 나가는 쌓인 컨테이너들만 봐도 제주 동쪽의 무 사업이 상상이상으로 크다는 것이 짐작이 간다.

고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제주의 겨울은 튼실한 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계절이다.

종달리엔의 이웃들은 직접 무농사를 짓거나, 친척이 무농사를 하거나, 무세척공장이나 유통을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누가 두고 갔는지도 모르게 문 앞에 무들이 자루째 놓이는 날들이 많다.

무는 귤과 함께 제주(시골)도민이라면 돈 주고 사는 것이 자존심이 좀 다치는 존재다.


그렇게 우리와 만난 무들은 주방으로 들어와 매끈하게 씻고, 적당한 크기로 숭덩숭덩 썰고 오래 끓여야 하니 깨지지 않게 사면의 각진 모서리들을 모두 둥글게 깎아둔다. 가장 큰 솥에 무를 잔뜩 넣고 가쓰오부시를 넣고 끓이기 시작. 얼마큼 끓이는지 묻는다면 애매모호한 답이지만 ‘오래오래’ 

젓가락으로 찔러 들어갈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얀 무가 갈색의 가쓰오부시 국물을 모두 머금어 비슷한 색이 될 때까지. 짭짤하기만 했던 가츠오 국물이 짭짤 달큼해질 때까지. 끓인다. ‘오래오래’

무는 공짜로 얻었지만, 3일 이상 푹 끓이니 가스비로는 우리가 판매하는 오뎅 메뉴 중에 원가가 가장 비싼 몸이 된다.

가끔씩 일행 손님 중 한 분이 오뎅 중 무를 고르면 상대방이 “무?” 하며 되묻곤 한다.

단무지도 공짜인 우리나라에서 국물을 낸 무를 돈 주고 사 먹는다고? 그 돈이면 어묵을 더 시켜라는 말이 물음에 함축되어 있다.


나 또한 그랬었다.

일본에 살던 시절엔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이자카야에서 오뎅을 시키면 꼭 무를 시키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함께 주문해 나눠 먹는 메뉴에 왜 하필이면 무를 넣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이자카야나 오뎅가게는 어쩌다 한 번이고, 추운 겨울 점퍼에 슬리퍼 신고 룸메이트와 편의점에 뛰어가 김 서린 안경을 닦아가며 카운터 앞 오뎅매대에서 포장할 오뎅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묵 안에 소시지가 있는 윈나마키랑 캬베츠롤 계란 곤약 큼직한 치쿠와를 좋아했는데 룸메는 꼭 무를 두 개씩 골랐다. 내가 안 먹는다고 해도 두 개였다. 아니 맛있는 오뎅 두고 왜 무를 고를까? 무에 손을 데지 않는 나에게 룸메는 “내가 좋아하는 걸 네가 안 좋아해서 섭섭해. 나 믿고 한 입만 먹어봐.”라며 노란 겨자를 살짝 찍어 무 한 조각을 건네줬다. 마지못해 입에 넣었다. 그런데,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린다. 노란 겨자 덕분에 코끝이 찡하면서 기분 좋게 달큼하고 짭짤한 맛. 콧구멍이 커지고 동공이 커지는 맛.

그동안의 고집이 민망해 룸메이트에게 “무 왜 맛있다고 안 알려줬어?”라고 웃으며 그동안 무는 별로라고 말해왔던 내 고집도 사르르 녹았던 겨울, 도쿄의 기억.


식당에 오뎅냄비를 들이고 나도 가장 중요시한 것도 바로 무였다.

오뎅은 일본 식자재상에서 받아오는 것으로 아마 직접 만드는 몇 곳을 제외하고는 전국이 비슷한 맛이라면, 우리가 우리의 맛을 낼 가장 중요한 히든카드는 무였기 때문이었다. 

휴무의 마지막 밤 루틴은 언제나 청소를 시작하는 늦은 점심부터 늦은 밤까지 손질한 무를 내내 팔팔 끓이는 것이 되었다. 오래오래.

한주를 시작해 영업 1일 차, 2일 차, 3일 차... 점점 짙어지는 무의 색. 한주영업의 마지막 날이 되는 5일 차에는 군고구마 맛이 나기도 한다. 아주 짙고 고소하고 짭짤하고 부드러운 맛.

우리가 무에 시간을 들이는 것을 알고 계신 몇몇의 손님들은 오히려 주문할 때 혹시, 무만 세 개를 시켜도 괜찮나요? 라며 되묻곤 하신다. 우리의 정성을 알아주시는 거 같아 고맙고 신이 나서 제일 큰 무를 고르고 골라내어드린다. 납작한 접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를 턱 올리고 접시 끝에 노란 겨자를 살짝 올린다. 


뜨겁고 맛있는 음식이 들어갔을 때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손님들의 “음~” “하~” “오~” 같은 한마디로도 오늘 무가 잘 삶아졌구나 하고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 맛을 아는 것도, 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딸과 함께 오신 어머니들은 “뭘 무를 시켜~”라는 말씀들을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뒤통수에서 그런 작은 실랑이가 느껴지면 어머님께는 우리의 정성을 꼭 맛보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가끔 무를 서비스로 드리곤 했다.

"무를 꼭 시키세요"등의 후기를 보고 기대를 많이 하고 주문을 한 손님은 "뭐야 그냥 무네"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맛있다고 서술했지만 사실 무는 무일뿐이다. 

맛있어도 무는 무.


돈 주고 사기엔 살짝 아까운 무를 받아와 오랜 시간 끓여 오뎅을 내는 우리에게도, 오뎅 메뉴 중 돈 주고 사 먹기엔 살짝 아까운 무를 고를 수 없는 손님에게도, 같지만 다른 의미로 아까운 무.

누군가에겐 흔하디 흔한 무이지만, 우리가 마음까지 넣어 오랜 시간 푹 끓이고 나면 분명 누군가는 분명 우리의 마음을 알아채 준다. 모두가 알아주길, 모두가 좋아해 주길 바라진 않는다. 무는 무, 우리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존재는 바뀌지 않는다.

단지, 하루에 몇 번 오뎅을 서브하고 뒤돌아섰을 때 “음~”하는 목소리를 이따금씩 듣는다면 그것으로 우리도, 자루째 실려온 무도. 모두 할 일을 다한 것일 테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