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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Jun 04. 2024

버리기 시작하면 얻는 것은?

1월의 에피레터 키워드: 시작

 

내 삶은 차마 버릴 수 없는 물건들로 언제나 가득했다.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서는 무엇이든 넘친다. 화장대 서랍을 열면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각종 화장품 샘플과 더 이상 쓰지 않는 수많은 색조 화장품들을 애써 못 본 척해야 한다.


중고 서점에 판매하려고 꺼내둔 책은 이런저런 핑계 때문에 3주째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제자리에 있다. 언젠가는 멋지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한 옷들도 늘 옷장 속에서 버티고 있다.


그렇게 나의 방은 깔끔하고 안락한 공간보다는 견디고 무시해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영영 그랬을 것이다.


“가진 걸 버려야만 그 빈 곳에 좋은 것이 들어오기 시작해요.”


그 유튜버는 나와는 달리 무엇이든 과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흑백 위주의 단순한 썸네일, 배경 음악 하나 없는 담백한 영상 구성, 항상 일정한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안정된 스토리텔링. 그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단정하고 담백했다.


그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난 후 문득, 수많은 물건들로 뒤죽박죽인 나의 서랍 속을 바라보다가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하면 정말로 삶이 달라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유튜버의 말은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미신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왠지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 정돈을 하면 과거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갈색 아이브로우와 헤어 케어 제품은 예전과는 달리 나는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절반쯤 쓴 뒤 아무렇게나 보관해 둔 강렬한 향의 바디 로션은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달리 자극적인 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생각해 보니 내가 더 이상 특정 물건을 찾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는다면, 그 이유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들이 필수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는 성향도, 취향도, 모습도 전부 다 다르니까.

화장대 서랍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언젠가는 꼭 필요해 보이는 물건이어도 지난 1년간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물건들을 고르고 골라 휴지통에 버렸다.


그동안 정리 정돈과는 먼 삶을 살았으니, 그와 반대되는 정돈된 환경을 삶에 새롭게 들여놓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해는 무엇이든 시작하고 어떤 미래도 다짐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해의 시작인 1월에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매일 하나씩 찾아 버리기는 습관을 새롭게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의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삶에 들이기 시작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안녕하세요! 저는 현의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유심히 보고, 그 속에 담긴 긍정에 대해 기록하는 걸 가장 좋아해요. 앞으로 매주 수요일에 일상 속 사소한 물음에서 저만의 긍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레터로 찾아뵐게요. | 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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