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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Apr 25. 2024

달콤한 사랑을 고백하는... 봄



맑은 계곡물이 콸콸 흐른다. 이곳에도 드디어 봄이 왔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봄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온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겨울은 이미 떠나간 지 오래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봄이 안 온다고 징징댔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나무들은 새이파리를 매달고 바람 따라 하늘하늘 춤을 춘다. 어느새 그 많은 나무들이 봄을 맞고 잎을 키웠는지 모르겠다.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오고 가는 것인데 봄을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


지난가을 떨어진 낙엽들이 여기저기 뒹굴어 다니고 틈새사이로 파릇파릇한 풀들이 나와 인사를 한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추워도 봄은 온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찬란한 봄을 맞고 있는 세상은 너무 눈부시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봄은 한 곳에 있지 않고 세상을 감싸 안고 달콤한 사랑을 고백한다. 계곡옆에 두껍게 얼은 얼음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얼마 가지 못할 것 같다.


봄이 와서 좋은지 까치와 까마귀들이 숲을 찢을 듯이 짖어대고. 딱따구리는 부리가 부러질 듯이 나무를 쪼아댄다. 어떻 해서든지 먹고살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생존할 수 는 인간들처럼 그들에게도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지난겨울을  떠 올려본다. 아무도 걷지 않은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봄이 언제 오려나 생각했는데 봄이 와서 기저기서 손을 흔든다. 겨울의 흔적은 전혀 없이 언제나 봄이 있었던 것처럼 화사한 햇살이 숲 속의 오솔길을 비춘다.  


아름다운 숲을 처음 만난 것처럼 설렌다. 나무를 타고 장난치는 다람쥐들과 친구가 되어 걷는다.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재주를 부리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오리들이 계곡에서 헤엄을 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맑고 푸르고 바람도 없다. 눈녹고 얼음도 없고 질퍽하던 길도 걷기 좋게 말랐다. 봄이 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세상은 봄기운이 물씬 풍긴다. 온 숲이 남편과 나를 위한 숲인 것처럼 조용하다. 자연과 함께 걷는 우리의 발길도 가벼워 하늘을 날 것 같다.


눈이 없는 땅에는 어느새 민들레가 자라기 시작한다. 새파란 이파리로 수줍게 나와 있는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우면 숲은 화려한 옷을 입는다. 미끄러질 걱정 없으니 걸음이 빨라진다. 버드나무는 노란 가지를 보여주고 지난가을 넘어진 낡은 들꽃들도 허리를 굽히고 누워서  새순을 기다리고 있다. 삶은 이렇게 돌고 돌며 세월을 따라간다. 나무는 자라 굵어 나이 들어가고, 꽃은 피어 시들고 계절 따라서 온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지난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진 나무들이 여럿 보인다.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것들도 세월을 이겨낼 수 없다. 오솔길에 피어나는 새싹들이 예뻐서 자세히 본다. 혹독한 추위와 살인적인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화려한 왕관을 쓰고 앉아있다. 사노라면 삶의 겨울을 만나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아무도 몰래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기도 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한다.


냉정한 바람이 몰아칠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다. 하지만 세월은 끝내는 봄이라는 희망을 안겨준다. 새싹을 보고 있노라면 아픔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또 다른 나날을 살아가게 한다. 아직은 완연한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봄과 함께 걸으면 마냥 좋다. 북향에 흐르는 계곡에는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녹지 않고 있지만 얼음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은 사이좋게 강을 향해 간다.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나서 바다로 가는 희망으로 앞으로 간다.


겨울을 벗은 숲이 아직은 어설프지만 머지않아 초록으로 변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설렌다. 나무에 잎이 나고 땅에서 산나물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저마다의 최고의 모습을 자랑하며 한해를 살아가는 것은 기적을 보는 것이다. 비뚤어지고 굽었다고 기죽지 않고 기어이 열매를 맺는 모습은 대견하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이유 없이 나온 것이 없고 저마다의 할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위대하다.


몇 년 전에 숲 속을 걸어가다 보니   나무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죽을 줄 알았던 나무가 꺾어진 채로 땅에 누워서 꽃을 피우던 생각이 난다. 생명은 그처럼 강하다. 하찮은 나무 하나도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 적이 있다. 한국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데 마음을 비우면 행복도 따라온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별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걸면 한 치 앞을 보지 못하지만 멀리 보면 세상이 아름답다.


나무들이 햇살을 더 받기 위해 하늘높이 자라고 계곡물이 바다로 가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간다. 봄은 오래 머물지 않고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또 다른 봄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날씨가 좋아 봄에 취해서 다른 날보다 더 많이 걸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 기분에 따라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삶이다. 기왕이면 좋은 생각, 기쁜 생각을 하면 행복지수도 높아질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은 마음이지만 뱃속에서 신호를 보낸다. 몸의 말을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집으로 가는 길로 방향을 돌린다. 오늘 만나지 못한 인연은 내일 만나기로 하자. 숲에서 만난 행복을 가득 안고 가는 길은 기쁨이 넘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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