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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롱 Dec 22. 2022

반드시 영화관에서 세계관을 열어야 할, <듄>


  일로 만나는 작품과 자발적으로 시청하는 작품은 느낌이 천지차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 듄을 보게 된 것은 영화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 덕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영화 비평 학회를 하며 <컨택트> 속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잔잔한 호흡을 인상 깊게 봤었다. 그 기억으로, 감독과 장르만 보고 홀린 듯 영화 <듄>을 조조로 예매했다. 

  컨택트도 그렇고 듄 또한 원작이 있는 것이라 하니, 작품의 원천은 결국 작품이 되는 시대다. 상상에만 미쳤던 것을 실제로 꺼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서사가 어떠한 장르와도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인 만큼 만화, 소설 그 무엇이 되었든 관련된 일을 하는 데에 필연적으로 도움이 된다. 나는 해리포터, 어벤저스와 같은 시리즈물을 정주행 한 적도, 관심을 크게 가진 적도 없는데 이번 듄의 엔딩크래딧을 가만히 보며 '듄 시리즈에 단단히 꿰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고사하고 내가 좋아하고 잘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인간이 겪는 표현의 장벽은 언어뿐

  원작이 1965년에 쓰인 것이다 보니 서사는 단순하다. 흔한 클리셰도 여럿 등장하는 비약적인 영웅서사다. 먼 미래임에도 수직체계가 분명한 제국의 형태를 가졌으며, 인류가 한차례 멸망하여 기술도 그다지 발전돼있지 않다. 또 주인공이 너무도 모든 걸 갖춘 이상적인 능력자다. 뻔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익숙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안정적인 스토리로 느껴졌다. 초반 세계관 이해에 애를 쓰는 분들이 많던데, 그것만 습득하고 나면 감상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초반에 듄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내레이션이 장황하게 열거되지만, 방대한 SF소설을 2시간 남짓 영화로 담기엔 확실히 역부족이다. 더불어 이번 <듄>은 책 1권의 절반 내용밖에 담지 못했다고 한다. 결론보단 도약의 내용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에 깔끔한 SF서사를 기대한다면 찜찜한 느낌이 많이 들 것이다. 그래선지 나 또한 서사보단 영화 기법에 눈길이 갔다.


  글로만 표현돼있던 우주 세계관을 완벽히 시각화해낸 것을 보면서, 발전된 영화 산업은 쉽게 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영화만의 도전적인 매력이 있다. OTT로 인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다방면으로 허물어졌지만, 듄을 보면서 영화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SF와 우주,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안 볼 이유가 없다. 인간의 영화가 지구, 혹은 우주의 특정 행성에서 그쳤다면 듄은 더 나아가 행성 간의 교류, 제국의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구축하고 표현해내야 할 행성이 배가 된다는 뜻이다. 원작보다 더 광활하고 멋진 우주를 재현해냈을지 모른다.


  또한 듄은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시각적 요소는 큰 모니터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청각적인 요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관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운드와 울림이 대단하다. 영화 내용 중 등장하는 특유의 기술인 '보이스'를 영화관 우퍼 장치를 통해 진공 속에서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해 냈다. 배경음악 또한 가슴이 울릴 정도로 웅장하다. 감독이 누구인가 했더니 영화 음악의 대가 '한스 짐머'여서 이러한 웅장함을 금방 수긍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든 블록버스터든 장르 불문의 음악을 찍어내는 거장, 존경스럽다.




장르 '인간'에서 오는 불확실성

  지구가 한바탕 뒤집어지고, 다른 행성에서 전혀 다른 괴이한 능력과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인간의 사고회로는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등장인물이 여전히 '인간'인 상태로, 현재와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지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모습은 한 주인공은 기존의 인간은 가질 수 없었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 상상 속에서만 가늠했던 인물이 현실로 등장하면서 주인공은 데자뷔와 혼란을 겪는다. 구현되지 않을 불확실한 자신의 상상 속에서 보인 인물을 만난다면 관심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다. 운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만났을 것이라는 '귀인 이론'과 호, 불호 중 한쪽의 입장을 택하게 되는 일관성의 원리에서 인간은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을 위한 인간의 작품 영화이니 당연하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장르 속에서 우리는 최대한 폭넓은 시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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