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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 Mar 12. 2024

엄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12

아들이 대신 써주는 엄마의 인생

형님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오는 길도, 도착했을 때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왜 또 술을 마시고 그랬어?"


"꼭 그렇게 모진 말을 해야 했어?"


이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마음 또한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


생각하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나였다.


"왜 나를 만나 이렇게 서로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느냐"라고 하니 피식 웃기만 했다. 


기가 막힌가 보다.


사실 남편 주위엔 친구며 동창생들이며 군대 부대원들도 전부 술꾼들인 반면,


의 집안에는 밀밭에만 가도 술이 취한 정도로 대대로 술을 드시는 분들이 없다.


난 돌연변이인가. 


아니, 괴로운 그 시간을 잊으려 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술맛도 모르고 입 안으로 들어붓듯이 넘기는 스타일이지. 


그러니 제 몸이 성할 리가 없지.


공장 직원 중 한 분이 배추 농사가 잘되었다며 배추와 무를 가지고 왔다.


주말에 남편과 둘이서 절이고 일요일에 씻어 김장을 담았다.


김장을 담으면서 소주 한 병을 마셔버렸는데...


그러다 아들이 알아 버렸다.


아들이 하는 말, "엄마 진짜 죽고 싶느냐며, 이번에 병원에 가서 검진받고 이상이 있으면 다 나을 때까지 병원에 좀 있어야겠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는 나를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입원시키고 가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 수치가 너무 높아서 입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다고 한다.)


남편도 이제 나도 지쳐서 모르겠다며 아들 시키는 대로 하라면서 가버렸다. 


잦은 음주 때문에 간 수치가 너무 높아 간경변까지 갔다고 내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반드시 누우면 배 위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은 듯한 기분이고 기침도 잦았다. 


아들은 입원한 김에 건강 검진도 하자고 해서 모두 검사를 해보았다. 


간이 폐 쪽으로 조금 부어 있고 대장용종도 있었다.


대장 용종도 떼내고 알코올성 간염이라 술만 안 마시고 치료하면 괜찮다고 하신다.


술귀신에 쓰여있을 때에는 아들이 괜히 짜증과 잔소리가 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족 없이 홀로 외롭게 남겨진 나는 건강 관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고, 낯선 이들과 함께 더불어 지내야 한다니 앞이 캄캄하고, 그렇게 가족을 모두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식도 어렸을 때 자식이지, 성인이 되어 가정이 있으면 부모의 관심은 조금은 멀어진 것도 같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괜히 눈물이 나고 서글프다.


부모 마음은 변함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무한정인데, 줄 것이 없어도 주고 싶고, 주라 하지 않아도 주고 싶은데, 참으로 인생이 덧없고 무상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생각해 보니,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마음 없었더라면, 엄마가 술을 마시든 병이 들든 무슨 관심이 있었겠는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들이 병원에 끌고 오지 않았다면 난 이미 간경화로 악화될 대로 되었고, 전두엽에 이상이 있다는 것도, 대장 용종도, 위장염에 헬리코박터, 온갖 병에 시달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이런 나하고 끝까지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아들은 나와 얼굴을 마주치면 냉정한 얼굴로 사늘한 표정으로 나를 아프게 했지만,


남편도, 아들도, 이쁜 며느리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원하고 있었다.




하루도 조용한 날 없는 곳이 병원


매일 삶과 이별하고 있는 곳,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복수가 차서 산달처럼 다니는 남자,


정말 각양각색의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입원하는 곳,


종합 대학병원이니 병들도 종합적으로 앓고 있는 곳이다.


나는 간수치가 빨리 안 잡혀 의사 선생님께서 퇴원을 시켜주시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술을 마실게 뻔해 보여서였을까? 


나를 담당해 주셨던 내과의사 선생님의 성정을 보았을 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분이셨다.


그분께도 너무 감사하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져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데, 이런 곳에 오면 생각이 바뀐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옛날엔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나는 왜 저렇게 아픈 사람들과 함께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는 것인지 자괴감이 밀려왔다.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20대의 꿈도 어쩐 일인지 저 멀리 흩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건강하고 힘 좋던 남편 역시 나를 만나기 전에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나와 같이 우울증 약 공황장애약을 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아마 다른 남자 같았으면 몇 번은 도망갔을 법도 한데 그래도 아직 날 버리지 않고 끝까지 나를 붙들고 함께 살아보려고 하니 고맙기도 하면서, 돌아서면 그 미안한 마음을 깨끗하게 잊어버리니 이 얼마나 기가 찰일 인가  


그제야 정신이 조금 차려지는지, 병동의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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