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꽤 오랜 시간 나는 나의 병명조차 알지 못했다.
눈떠보면 구급차, 응급실.
몇가지 검사 후
" 의사 선생님, 그냥 가면 되나요 ? "
" 네 푹 쉬시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크면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으니 지켜봅시다. "
" 성격이 예민해서 그래요. 마음 편하게 먹고 사세요 "
(마음 편히 먹고 살라는 말한마디에 예민한 사람이 둔감해질 수 있다면 예민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요 ?)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
현재 치료는 불가능하는 말, 돌아가시라는 말을 듣고
그래 언젠가 어른이 되고, 나이가 먹으면 없어질지 모르는다는 기대로 살았다.
나는 만 20세가 넘어도,
대학교를 졸업해도,
만 30세가 넘어도
충분한 어른이 되어도 반복되었다.
결혼을 앞두고서야 나는 비로소 이 증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비신부,신랑이 많이 가는 결혼준비카페, 어플 등에서 관련 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까지도 나만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가끔씩 사람들이
" 아 기절할거같아."
"오늘 쓰러질뻔했잖아" 이런 농담섞인 말들을 할 때 나는 편히 웃을 수 없었다.
때로는 진짜 기절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에 속상했다.
'기절이나 해보고 기절할 거 같다, 쓰러질거같다고 하는걸까?
그 기절하는 동안이 얼마나 공포인지 알기나하나'라고 마음 속으로 외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가능하면 내 치부를 들키지 않고 싶었다.
그렇게 감추고 산지 2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동지들을 만난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지만 그런 공포를 아는 사람들을 인터넷상에서 만난것만으로도 반가웠다.
드레스가 조여 기절했다는 글, 긴장이 되서 숨이 막혔다는 글,
어지러워서 주저앉았다는 경험 후기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실신 경험자들은 자신의 결혼식날 그들과 같이 기절할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결혼식날 어떻게하면 미주신경성실신이나 공황장애
증상없이 무사히 넘길 수 있는지 집단지성을 모아 비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드레스 이모님에게 결혼식날 꼭 드레스를 꽉 조이지 말라고 말해야하고,
그리고 나는 긴장하면 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모님의 중요 임무인 소중한 드레스를 지키기를 위해)
꼭 말해놔야한다는 사실을 귀뜸해주어야하는 조언들'을 의사선생님말보다도 소중히 새겼다.
아 그렇구나 ..나만은 아니었다.
내 결혼식에서 주인공인 내가 기절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너무 끔찍했지만,
많은 신부들이 경험하고있다는 사실에 나만은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실제 만난적은 없지만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TV에서도 연예인들이 기절하는 기사, 미주신경성실신을 고백하는 모습들이 많아졌다.
공황장애, 불안장애에 이은 유행처럼 고백자들이 많아졌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이제는 용기를 내볼까.
비쩍 마른 여리여리가 아니어도,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는 셀럽이 아니어도,
그럴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