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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빛 북프랜 Jan 14. 2021

 공무원 시험감독을 했던 날의 떨림

아빠의 퇴직- 엄마의 한숨

"저분이 시험공부를 할 체력이 되셨을까? 이번에 떨어져도 또 시험을 도전하시려나?" 

시험지에 열중하다 몇 분 집중 후 이내 목 스트레칭을 하며 고뇌하는 아주머니 수험생에 눈길이 갔다.


임용 후 정년퇴직이 몇 년이나 남았을까?

수험표의 나이를 보니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다.


혹시 우리 팀에 저런 나이의 분이 주무관으로 온다면, 사실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업무를 잘 배우실 수는 있을까?

사기업에만 계시던 아버지뻘의 분이 공직에 막내로 오셔서 본인도 주변도 너무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온 탓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이 앞섰다.


경력단절 여성,

아마도 자녀들 결혼까지 마치시고 이제야 자신을 찾기 위해 이 자리에 와계신 게 아닐까?

앉지도 발소리도 낼 수 없는 지루한 시험감독의 시간 동안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 수정테이프 사용으로 답안지를 바꾸는 일이 거의 없다._)


나의 꿈을 찾겠다, 아니 꿈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그저 내가 사회 속에서 다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고뇌를 했을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당장 손자를 내놓지 않으면

당신도 무슨 일인가 이제 시작하고 싶다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일자리를 찾아봐도 도저히 엄마의 자리는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 된 채로 세월이 흘러갔다는 허무함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아빠의 퇴직에 갑자기 가계수입이 없어진다는 두려움에

무언가라도 돈벌이를 찾아 나섰던 엄마는 세상 앞에 무력해졌다.


내 기억에 엄마의 폐경 이후 아빠의 퇴직은 엄마에게도 나이 들어감에 대한 자각을 크게 하게 된 사건인 것 같다.

앞으로 이제 우리 둘이 평생 집에서 밥해먹고 살아갈 날들만 남았다는 생각.

그 생각이 이제 노년이 되었구나, 자녀를 다 키우고 이제 결국 둘이 남았고,

사회에서도 본인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통보받는 기분.


그런 기분일까.


어쩌면 우리 엄마와 같은 시간들을 보내다가

그 아주머니도 공무원 시험장까지 오시게 된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아주머니처럼 그 나이에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기에 늦었다고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삼십 대에는 도전보다 안정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상하리만큼 그 시험장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는 게 큰 자극이 되었다.

아직도 무언가 시작하기에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홀린 듯 혼자 아픈 다리를 잊고자 상념에 빠져든 감독의 시간이 끝날 때쯤

나도 새로운 꿈을 찾아 지금이라도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강한 설렘을 느꼈다.

너무 오랜만에 두근두근함을 느꼈다. 뭐든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메시지가 날아온 거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그 자리도 맡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떠나야 한다.


나는 시험감독을 하고 온날도,

작가의 서랍에서 그 날의 일기를 다듬고 있는 오늘도, 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외부의 눈치 보다 내 내면의 눈치를 보며

타인의 요구를 맞추기보다 나의 요구를 수용하고자 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 일단 그거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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