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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Dec 07. 2023

네가 어떤 사람일지 몰라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내가 너를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너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나의 유전자와 나의 남편의 유전자를 반씩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점. 그래서 어느 정도는 나를 닮을 것이고 어느 정도는 남편을 닮게 되겠지만, 그 어느 정도가 어떻게 얼마나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토록 정체를 모르는 너에게 나는 벌써부터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주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너에게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자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대상이 없으니 아직은 이 마음이 모성애라기보다는 자기애인지 모른다. 내가 결정한 이 일이 그저 잘 되기를 다짐하는 것. 다만 다짐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서, 나는 그게 무섭다. 그 마음만으로 잘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너를 기다리면서, 내 주변에 있는 엄마들에게 다양한 얘기를 수집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흘려들었을 이야기들, 당시에는 웃으면서 들었더라도 금방 까먹었을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들이 지금은 무척 흥미롭게 들린다. 그중 제일 재미있는 건 역시 내 엄마의 이야기이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너와 나의 관계를 더욱 실감 나게 상상하게 만든다. 


엄마는 91년도에 우리 부모님에게는 두 번째 자식이자 딸인 나를 낳았다. 그때 엄마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여덟 살이나 더 어린 나이였다. 이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 너에게도 올까. 스물다섯 살이었던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 나서 낳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의 엄마 나이를 훌쩍 넘겨, 내가 서른 살이 되어서 그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냥 이해가 되었다. 임신 중절이 흔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해에 시가 식구들에게 우환도 많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어서 고민이 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점을 보러 갔더니 ‘그 애가 복덩이이니 낳으라고, 나중에 크게 될 거라고’ 해서 결국엔 낳기로 결정한 것이라 했다. 엄마는 그러면서 나에게 ‘언제 크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하고 덧붙였지만.


엄마는 자주 내 성격의 느림과 느긋함에 대해 말하며, 너는 태어날 때부터 느렸다고 했다. 출산 예정일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신호가 오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요즘 같았으면  진작 유도 분만 촉진제를 맞았을 테지만, 그때는 좀 더 기다리는 편이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는 폴짝폴짝 뛰고,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결국 내가 나오게 된 날은 (엄마 표현으로) ‘이 따시만 한 호박을 들었다 놨다’ 한 날이라고 했다. 예정일을 한참 넘겨서 나온 만큼 나는 덩치가 큰 아기였다. 3.9kg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다 자란 지금은 평균보다 작은 사람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만큼은 컸다.


“너는 아무나 못 안았어”라고 엄마는 말했다. 내가 너무 무거워서 말이다. 사람들이 잘 안지 않으려고 했단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납득이 간다. 내 신생아 시절만큼 온몸에 젖살이 빵빵하게 오른 애기는 아직까지 못 봤던 것 같다. 안기는 힘들었어도 기질은 순한 편이라 키우기에 아주 버거운 아이는 아니었던 듯하다. 엄마는 자주 나와 내 오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하며 들려주었다.


까탈스러운 편이었던 오빠는 분유를 먹을 때에도 온도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휙 내던지곤 했단다. 잠을 재우려고 하면 밤새 안고 있어야 했고, 동네 한 바퀴씩 꼭 산책하고 왔어야 했다. 또,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그날 저녁에 열이 펄펄 오를 정도였다고. (장난감을 사줬더니 그날로 열이 내렸다는 게, 장난감 때문에 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줬다. )


반면, 나는 어떤 아이였는가 하면, “여기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 엄마 아빠가 산에 가서 한두 시간이나 밤을 주우러 다녀와도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정말로 가만히 있는 아이라고 했다. 엄마말로는 잘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많이 우는 편이었던 오빠와 비교하여 상대적인 것일 거다.) 동네에서 비료 포대를 갖고 아빠랑 같이 눈썰매를 탔는데, 눈썰매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자더라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뭔가를 갖고 싶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잘 없었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은 내 친오빠처럼 까다로운 기질인 편이었다. 까다로운 성격이 양육할 때야 부모 입장에서 힘들 수 있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좋은 부분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자기표현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기도 하니 아이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도 있다고.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건 잘 참는다는 것이기도 한데, 그건 속으로 삭인다는 것이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말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가 부모님의 유전자를 4분의 1씩, 동시에 나의 유전자와 남편의 유전자를 반반 물려받을 너의 성격은 나 같을 수도 있겠고, 나의 오빠나 남편을 닮았을 수도 있다. 나는 네가 어떤 성격이든, 너와 잘 맞춰나가려고 너와 잘 지내보려고 매일매일 노력하게 될 것이다. 성격이 나 같다면, 더 열심히 말을 걸어볼 것이다. 내 남편 같다면, 들어줄 수 있는 요구와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매일매일 알려주며 실랑이를 벌일 수 있겠다. 어떤 지옥 같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든, 너는 내 운명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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