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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Nov 24. 2021

쉽게 감사하는 3가지 기술

칭찬과 감사는 다르다 

  작년에 한동안 소소의 칭찬일기를 쓴 적이 있다. 아이를 무조건 믿어주겠다는 다짐이 수시로 무너지고 작심 반나절이 계속되자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칭찬일기다. 뭔가 가시적인 증거가 있으면 덜 불안하지 않을까. 소소가 뭘 잘했는지 기록한 다음 반복해 읽으며 잘 크고 있다는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세뇌시켰다. 이거 봐! 잘하고 있어! 흔들리지 마!


  불안에 힘 한번 못 쓰고 당하기만 하다가 능동적으로 대안을 생각해낸 나 자신이 기특했다. 정신과 상담일에 칭찬일기 프로젝트에 대해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엄지를 치켜세울 줄 알았던 김날따 선생님의 피드백은 오늘도 예상을 비껴갔다.  


  “아이가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불안한 엄마의 멘탈을 잡기 위해 칭찬일기를 쓰는 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요. 만약 아이에게 그날의 칭찬거리가 딱히 없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그럼 뭔가를 잘해야지만 사랑하는 내 아이인가요?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과 대치되는 문제로 보여요. 그리고 지금은 칭찬일기라고 하지만 신니씨의 성격상 관찰일지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더 불안해질 수 있어요.”


  선뜻 수긍이 되지 않았다. 칭찬은 좋은 거 아닌가. 나는 며칠만 더 해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날따 선생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관찰일기로 변한 칭찬일기는 전격 철회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칭찬일기가 아닌 감사일기였다. 칭찬과 감사는 둘 다 좋은 의도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칭찬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뭔가 기특한 일이 일어나야 할 수 있다. 반면 감사는 다르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심지어 고통스러울 때 혹은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저도 감사할 수 있다.


  그걸 알게 된 건 감사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동안은 ‘좋은 일이 발생하면’ 그에 대해 감사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반만 맞았다. 그냥 현재 내가 가진 것들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 자체도 감사다. 이를 테면 아기를 위해 쇠고기를 사며 '내가 아이 먹일 한우를 살 돈이 있구나'라고 기쁘게 생각하면 그게 감사다. 이는 월급이 올랐다는 '기쁜 이벤트'에 대해 감사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나는 샤워를 할 때 온수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도 감탄할 때가 종종 있다.(미드 워킹데드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다) 이것도 감사다.



  꾸준히 실천하다 보니 감사가 쉬워지는 세 가지 요령을 알게 되었다.


  첫째, 굳이 말끝에 '감사하다'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대신 ‘00 해서 기쁘다’, ‘00 할 수 있구나’, ‘다행이다’ 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감사하기가 한결 수월하고 자연스럽게 된다. ‘남편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줘서 감사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뭔가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대신 ‘우리 남편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주는구나’라고만 생각해도 된다. 그래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감사를 위해 필요한 건 단어가 아닌 인정이다.


  주변에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통하는 나의 언니에게는 말버릇이 있다. ‘그거라도 어디야’, ‘그런데 좋은 점도 있어’ 이런 말들을 습관처럼 사용한다. 어느 날 보니 초등학생인 조카도 엄마의 말버릇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언니가 훌륭한 유산을 물려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와 아이를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를 찾을 줄 아는 언어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둘째, 불쾌한 일이 있을 땐 반면교사를 통해 감사를 실천할 수 있다. 얼마 전 지인 S가 식당에서 도를 넘는 요구를 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지만 자꾸 S의 갑질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공통의 지인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 막 감사하며 살기로 한 사람에게 뒷담화는 맞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3일을 낑낑거리다 반면교사라는 탈출구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그래,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덕분에 나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생명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살면서 분명 타인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볼 기회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반면교사 하면 되고, 훌륭한 행동을 하면 본받도록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니 모두가 나의 스승이고 귀인으로 느껴졌다. 그러자 모든 인연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S를 생각하는 마음도 편안해졌다. 처음에는 S와 같지 않은 나 자신에게 감사했는데 더 나아가 귀인 S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셋째, 감사하기 힘들 땐 쉬운 감사부터 시작하면 된다. 어느 날 소소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치솟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환하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일단 소소에 관련된 감사하기를 포기하고 지금 당장 떠오르는 감사한 일들을 꼽아보았다. 그때 나는 빵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예전에 허리디스크로 절뚝거리며 다닐 때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끝날 때까지 다 건너지 못해 진땀을 뺐던 장면, 공황장애 초기에 침대에 꼼짝 못 하고 누워있던 장면. 그걸 생각하니 지금 비록 단 5분 거리지만 혼자 내 두 다리로 빵을 사러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어느새 우울했던 마음이 진정되고 몸에 힘이 느껴졌다. 그러자 소소와 관련하여 불안함 속에 가려져 있던 감사거리들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 꼭 감사를 찾고 싶지만 여의치 않을 땐 일단 다른 쉬운 감사거리를 일단 찾아 감사합니다 하고 외친다. 그러면 원래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돌아볼 기운이 생긴다.


  글을 마무리 지으며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느껴본다. 지금 시각 아침 6시 30분. 바깥의 기온은 0℃지만 보일러가 돌아가는 따스운 방에 남편과 아이가 이불과 뒤엉켜 잠들어 있다. 나는 일찍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며 취미생활을 누리고 있다. 아침 컨디션이 나쁘지 않으므로 어쩌면 오늘은 공황 증상이 안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풋 가져본다. 감사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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