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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Nov 25. 2021

You cannot embarrass me

엄마는 절대 너 때문에 난처하지 않아 (소소 33개월)

  미국에 살고 있는 B는 몇 해 전 직장동료 열 명을 초대해서 집들이를 했다. 같은 부서 안에서 집에 초대를 한 사람은 B가 처음이었다. 정식으로 초대장을 돌렸고 비싼 파티 음식도 주문했다. 손님들도 다들 와인을 왕창 사들고 왔다. B는 이 기회에 집들이도 성공하고 점수도 따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으니 바로 B의 6살짜리 딸 H였다. H는 모범생 스타일이라 떼를 부려봤자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인데 하필 그게 모든 동료가 초대된 날 일어났다. 그날따라 협조를 안 해주며 징징대고 부모의 바지를 잡고 보챘다. 당황한 B는 계속 주의를 주고 저기 가있으라 말하기도 하고 영화도 틀어줬다. 결정적으로 딴에는 아이를 변호한답시고 사람들 앞에서 계속 사과를 했다. “얘가 원래 안 이러는데 죄송해요. 졸린가. 오늘 얘가 왜 이러지.” 


  파티가 있은 다음날이었다. 상사가 B를 호출했다. B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 상사는 평소 업무든 무엇이든 지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진지하게 어제의 일을 언급했다.


  “H는 어제 파티에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고 호스트로서 완벽했어. 근데 네가 자꾸 아이한테 주의를 주고, 사람들 앞에서 아이 때문에 네가 난처하다는(embarrassed) 하다는 인상을 줬어. 그건 아이한테 굉장히 안 좋아.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너의 행동이 당황스러웠어(embarrassing). 아이한테는 ‘너는 절대 엄마를 곤란하게 하지 않아(You cannot embarrass me), 어떤 순간에도 엄마는 네가 자랑스러워’ 이런 식의 믿음을 심어줘야 해.” 


  상사의 말에 B는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다른 집 파티에 가면 그 집 아이들을 주시했는데 부모든 손님이든 애가 저지레를 해도 큰 주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가 뛰어다니거나(물론 아파트가 많은 한국에서는 다르겠지만) 찡찡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때린다던가 물건을 뺏는다던가 하는 나쁜 짓을 했을 경우에만 아이를 강하게 제지했다. “죄송해요.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라며 쩔쩔매며 변명하는 부모는 없었다. 


  B는 처음엔 이것을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상사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그저 아이다운 행동을 한 것뿐이다. 거기에 대해 “죄송해요.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혹은 “얘가 낯을 가려서” 이렇게 변명하는 건 사람들 앞에서 아이를 깎아내리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가 순간의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해 아이를 낮추는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문제아가 되어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되고 자발성이 죽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너 때문에 지금 엄마가 곤란해졌어’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네가 자랑스러워’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B가 이 에피소드를 전할 때 이렇게 마무리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더라고. 내가 나중에 호호 할머니가 돼서 식당에서 음식 먹을 때 막 흘릴 수도 있잖아. 그럴 때 H가 사람들한테 “죄송해요. 우리 엄마가 좀 이래요”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너무 싫은 거야. 하하하."



  B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애써 아이를 변호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1년 전쯤 집안 모임에 갔는데 소소가 방긋방긋 웃지 않았다. 집안에 오래간만에 태어난 아기라 다들 관심을 보였지만 소소는 주로 무표정했고 때때로 울기도 했다. 그때 나는 두려웠다. 일 년에 한 번도 모이지 않는 친척들이 집에 돌아가서 내 아이를 영원히 울보, 떼쟁이로 기억할까 봐. 소소가 나쁜 이미지로 각인될까 봐. 


  소소가 나쁘게 기억될까 봐 두려운 건 정말 소소를 위한 걱정이었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소소’가 미움받는 것보다 ‘내 자식‘이 미움받는 것이 두려웠을 거다. 내 자식은 곧 나의 일부니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평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다고 했다. 그렇게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며 변명하기에 바빠 아이의 불편은 살펴주지 못했다.  


  끊임없이 변명하고 쩔쩔매는 엄마 모습이 소소에게 결코 어떤 도움도, 귀감도 되진 않았으리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You cannot embarrass me. 이 문장이 가슴에 강렬하게 파고든다. 이제 나도 태세를 전환할 차례다. 어떤 순간에도 너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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