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의 여행 취향
저는 카페와 해변 솔숲이 떠오릅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강릉 하면 경포해변과 주문진 수산 시장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는 강릉 내 구석구석 자리잡은 테라로사나 보헤미안 같은 강릉 출신 (전국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닌!) 카페들이 생각나고, 해변 바람 맞으며 걷는 솔숲길이 생각납니다.
강릉은 국내에서 제가 가장 자주 방문하는 관광지입니다. 교통이 과거보다 훨씬 편리 해졌을 뿐 아니라 매력적인 리조트가 위치해 있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큰 매력을 느끼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방문해서 남들보다 매력을 더 잘 아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강릉의 가장 큰 매력은 서울(필자의 거주지)에는 없는 푸른 바다, 그 바다에 인접한 울창한 솔숲, 커다란 호수 등 강릉만의 고유한 자연환경 뿐 만 아니라, 그런 멋진 환경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막국수, 물회 등 ‘동해안스러운’ 메뉴들과 테라로사나 칠커피 같은 멋진 로컬 카페들 등 강릉만의 고유한 먹거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강릉에 가서 그런 현지 음식들이나 카페들을 안 가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듭니다. “강릉까지 와서, 막국수 한번을 못 먹네..…” 이런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왠지 꼭 해야 할 일을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번 방문 시에는 어쩌다 보니 서울에서도 흔히 갈 수 이탈리안 식당과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고 서울로 떠나는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찌나 허전하던지. 결국 마지막 식사는 양양의 막국수 집에서 30분이나 기다려서 기어코 막국수를 먹고 나서야 서울로 향했습니다. 그것도 꼬불꼬불 시골길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본점에서요. 가기 편한 시내에도 분점이 있는데 굳이 허름한 본점을 찾아가는 것도 “현지의 고유한 음식”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엄지네 포장마차와 테라로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강릉에서 태어난 식음료가 큰 인기를 끌어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진출했다는 점입니다. 엄지네의 꼬막과 테라로사의 커피는 맛있긴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 1등 정도는 아닙니다. 서울에 가면 테라로사 커피만큼 맛있는 카페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엄지네 꼬막만큼 맛있는 집 역시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브랜드들이 그렇게 커다란 인기를 끈 이유는 “강릉만의 지역적인 고유함”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없고 부산에도 없고 경기도에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테라로사는 이제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긴 하지만, 강릉의 경포호와 소나무를 바라보는 테라로사(경포호수점)나 솔 숲에 둘러싸인 테라로사(사천점)는 서울 카페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릉태생 브랜드이니 모름지기 강릉에서 방문해야 더 값진 거 같다는 생각도 괜스레 들고요.
3명의 공동창업자가 자기네 집 거실 한 켠에 에어베드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된 에어비앤비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이 편한 호텔들을 뒤로 하고 모르는 사람의 숙소를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가하면, 전문 여행가이드가 아닌 현지의 어느 일반인이 여행을 가이드해주는 마이리얼트립과 같은 여행경험 플랫폼이 인기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판에 찍어낸 듯 똑같은 그룹투어가 아니라 내 취향대로 현지의 고유한 경험을 원하는 개별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강릉 여행에서 맛있는 이탈리안과 고기를 먹고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데에는, 관광지에서의 고유한 경험을 충족하지 못해서 일겁니다. 사회학자 MacCannelle은 관광의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관광의 근본적인 동기는 원형적이고 자연적인 것, 즉, 고유성 authenticity을 찾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현실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실제(reality)”를 찾으려고 관광을 간다.
그 “실제”라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겠지만, 그 핵심에는 고유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Authenticity은 진정성, 고유성, 본래성, 정통성 등 분야에 따라 다양한 단어로 해석될 수 있는데요 관광학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요한 주제입니다. (* 본 칼럼에서는 고유성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과거에는 대체로 그룹 패키지 여행을 통해 관광이 이루어졌습니다. 관광지의 고유한 현지 문화를 경험하기 보다는 철저히 상품화 된 틀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대도시에서 흔히 보는 커다란 호텔에서 자고 관광객용 식당(tourist restaurant)에서 식사를 하고 정해진 코스를 둘러보는 식이었습니다. 진짜 현지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지 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별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 ‘관광객을 위해 짜여진 관광상품’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니즈가 충족되었던 거겠지요.
그런데 개인 관광이 활성화되고 여행의 니즈가 고도화되면서, 고유한 현지의 체험은 이전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그 현지 체험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인은 바로 F음식입니다. 관광 관련 보고서들에 따르면, 관광객들이 관광활동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으며 실제로 여행지에서의 음식소비가 과거에 비해 더욱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숙박 다음으로 높은 비용이 음식으로 지출됩니다.
00 도시, 00 지역 하면, 00 음식이 떠올라야 합니다. 여행에서 음식은 관광지의 정체성을 확립할 뿐 아니라 정체성을 알리고 더욱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릉이 많은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바다와 솔숲 같은 자연자원 뿐 아니라, 해변과 시내에 걸쳐 풍부하고 다양하게 분포된 현지 먹거리 때문이겠지요.
참고문헌: MacCannell, D. (1973). Staged authenticity: Arrangements of social space in tourist setting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사진출처: 남민정 개인사진
* 네이버비즈니스 남민정의 푸드인사이트, 2020년 8월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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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인사이트플랫폼 대표,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겸임교수
F&B 소비심리와 관광산업을 연구하고, 강연과 글을 통해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 인사이트플랫폼은 F&B를 둘러싼 다양한 전문가들을 통해 F&B와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 꼭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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