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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Feb 19. 2023

친정엄마의 치매예방법

1. 독서

그려 그려, 다른 거 없어. 건강하게 살다 죽는 게 복이지.

뭐... 어디 아프냐고?

아녀, 치매 올까 무서워서.

애들 아버지랑 화투도 하고 책도 읽고 숫자도 세보고.

그러니까 1부터 100까지 세고 다시 100부터 1까지 거꾸로 세는 거야.

아, 무슨 책이냐고. 그냥 이것저것 읽을 게 있으면 다 보는 거지.

그랴 그랴 너도 아프지 말어. 그랴, 언제 보자.

사는 주소 불러봐, 큰딸 오면 내가 찾아갈게.

왜? 물러?

그려 시골 같지 않고 도시는 주소가 어렵지!

이따 아들 오면 물어봐서. 아니지 적어달라고 해. 그리고 전화해서 알려줘.

응, 들어가, 그려, 끊어.


엄마의  친구분은 정월 대보름이 생신이시란다. 동네에서 클 때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라 생일엔 전화로 축하를 해주신단다.

그런데 생일축하는 안 하시고 두 분의 건강 이야기만 나누고 끊으셨다.

엄마의 앉으셨던 자리엔  '하숙집 이모의 건물주 레시피'와 '예산군 홍보책자'가 놓여있다.

겨우내 저 책을 읽고 또 읽고 계셨던 모양이다.


지난여름 엄마는 정신이 없다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다. 방금 전에 들은 이야기도 잊으시고 화도 예전보다 자주 내셨다. 젊은 사람도 그런 일이 흔하다고 위로를 지만 자식들도 속으로 걱정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정신없음은 농번기에 더욱 심한 것 같다.

더군다나 여름은 유난히 어려워하셨다. 날씨는 덥고 비도 자주 내렸는데 고추를 따야 하고  들깨도 심어야 하고 밭의 잡초도 뽑아야 했다. 당신 나이 드는 것 모른 체하고 계속 일을 만드셨다.

그만하시라고 아무리 말리고 자식들이 아무것도 안 가져가겠다고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웃들도 저런 엄마를 자식들이 왜 내버려 두냐고 걱정을 하지만 엄마를 말릴 재간이 없었다. 치매를 걱정하지 않더라도 생각할 틈이 없이 바쁘시기 때문에 당연히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하튼 그런 여름과 비슷하게 바쁜 가을을 보내고 겨울 동안 엄마는 당신의 뇌를 걱정하시며 뇌영양제를 드시고 수시로 숫자를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세다가 구구단을 외우고 아버지와 매일 화투 중 뭔 약이 많고 셈법도 복잡한 '육백'이란걸 하시는데 이것은 재미도 있지만 치매예방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친구분과 통화를 마치신 내가 육백을 배워보겠다고 엄마 앞에 앉아 화투패를 나누고 맞는 짝을 찾아와 에 잔뜩 모아 놓았지만  점수차로 졌다.

 화투장이 많았음에도 엄마한테 진 이유는 그러니까 약인지 뭔지를 모르고 짝만 맞춰온 나와 다르게 엄마는 점수가 높은 걸 계산하면서 짝을 가져가셨기 때문이다. 점수를 계산하시는데 50짜리 4개, 200. 이건 10자리 8개, 80. 이건 무슨 약 저건 무슨 약.... 420. 네가 약이 50이니까 내게서 그걸 제하면 370.

순식간에 두 자릿수가 세 자릿수가 되고 연산을 암산으로 몇백이 되고 다시 빼기까지, 젊은 나보다 훨씬 빠르게 계산을 마치셨다.


몇 판을 더 하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내게 "네 큰언니는 금방 배우던데 넌 그걸 모르냐."며 타박도 하셨다.

큰언니에게 전화로 엄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총기는 여전하시다고 전했다.

"그래, 엄마는 그렇게 계산도 잘하시고 그 복잡한걸 다 가르쳐 주시며 옆에 숫자를 적어 놓잖니. 그런데 계속 이기시면서도 이긴걸 자꾸 잊으신단다. 티브를 보시다가 저 이야기가 뭔지 말씀드려도 그땐 알아들으시는데 조금 지나면 그 이야기를 잊어버리셔."


걱정이 없으면 좋겠지만 걱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했을 때 괜찮으시다는 진단도 받았으니 엄마가 덜 분주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바쁘게 하던 일들을 강제로 줄이기로 했다.

일단 봄이면 옻잎을 채취해서 시장을 가시고 무엇보다 뚝에 있어 더 조심스럽던 옻나무를 잘라내고 밭에는 나무를 심고 정원을 넓혀 꽃밭을 가꿔 농사터를 줄이기로 했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고 있지만 뭔가 아쉽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책을 가져다 드렸다. 재미도 있고 교훈도 되는 책이라고 말씀드리니 좋다고 하셨다.

내 책이 나오자마자 엄마께 드렸을 때 금방 다 읽으셨다고 재미나게 잘 썼다고 좋아하셨는데 그땐 그저 딸이 쓴 거니까 보신 거라고만 원래 엄마는 책과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었다.

친구분과 통화하시며 책을 보고 읽을 게 있으면 본다는 말씀을 들어서 참 다행이다. 엄마의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엄마도 읽기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참 좋다.

이번에 드린 책에 대해 뭐라 말씀하실지 기대가 된다. 유익하고 성공적인 독서의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 또 그런 독서가 여름, 가을까지 이어져 정신없는 시간들이 아닌 정서적으로 풍성한 시간이 되시길 바라는 욕심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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