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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이모 Sep 10. 2023

똥의 눈치

눈치를 오래 보고 싶다

평일 아침 나는 두 손을 공손하게 배에 올리고 핸드폰을 쳐다보며 느리적거리는 남편에게 눈짓을 한다. 

알았어, 대답을 하거나 대답이 없거나 방에서 나가면 화장실로 들어가 주변이 조용한 것을 확인한 후 경건하게 똥을 싼다.

똥이 얼마나 예민한지 다른 사람 눈치를 본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여행기간 내내 똥을 누지 못해 변비에 걸린다. 남은 그럴 수 있겠지만 가족들의 눈치도 본다. 남편과 산지 30년이 넘었어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배변활동은 금지다. 아니 불능 상태다. 


그렇게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배변을 보는데 오늘처럼 공휴일은 문제가 일어난다. 평일과 다른 시간에 일어나고 다른 시간에 식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느라 경건의 시간을 놓친다. 그래서 하루종일 거북한 배를 안고 다닌다. 일을 하는 중에는 잊고 있다가 뭔가 속이 거북한 게 느껴져 신경이 배에 집중되면 아차 똥! 아침에 그 일을 못 봤구나 하고 깨닫는다. 오늘도 여지없이 평일과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시골로 가서 점심으로 매운 코다리찜을 먹고 일을 하는데.

배가 아퍼

난 밖에 있잖아, 들어가서 일 봐

거름이 귀하던 시절 용변이 급하면 집으로 돌아와 일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각종 비료와 퇴비들을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시댁이나 친정에 주지 못하고 기어이 내 집으로 돌아와 일을 치렀었다. 그런데 매운 음식을 받은 창자가 집까지 참지 못하고 요동치는 바람에 남편이 양수기를 틀고 일하는 시끄러운 상황에서 볼일을 봤다. 

그러니까 그 일은 조용하고 경건한 묵상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닌 거였다. 


휴게소의 화장실에는 새소리 나 물소리가 들리는 버튼이 있다. 작은 일을 보면서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장치다. 더 젊어서는 휴게실의 화장실도 가지 못하다 나이가 들고 요도의 인내력도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출입을 하면서 그 버튼이 반가웠으나 나처럼 소심하게 눈치를 보는 사람에게 버튼은 작은 일에만 소용되고 큰 일에는 쓸모가 없다. 소리 없이 번지는 냄새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똥의 눈치를 고찰하고 있자니 떠오른 일이 있다. 신혼 초 시댁의 화장실은 집 밖에 있어서 밤에 볼일이 있을 땐 남편과 함께 나가 인기척이 느껴질 만큼의 거리에 세워 두웠었다. 그러니까 눈치의 원인은 부끄러움이지만 부끄러움은 두려움 앞에서 맥이 풀렸던 거다. 평소엔 남편을 내 소리가 들리지 않고 민망한 냄새가 희석될만한 공간 밖으로 밀어냈다가 필요에 따라 당겼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위장 활동이 예전 같지 않다. 약속을 한건 아니지만 거의 매일 비슷한 시간에 하던 일이었는데 뒤로 미루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놓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신호가 와서 불편을 끼치기도 한다. 매운 음식을 먹고 익숙하지 못한 곳에서 급하게 볼일을 보고 나니 남의 눈치를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지 싶다. 노모를 모시고 여행길에 올랐다가 버스를 길가에 세웠다는 동창의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그때는 웃으며 들었으나 지금은 신혼 때의 시댁 화장실 앞에서의 두려움보다 더 공포스럽다. 똥이 남의 눈치를 오래 보기를 원한다. 가능하면 똥이 두려움은 모르고 눈치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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