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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Jun 20. 2023

불행이 내게 닥쳐오면..

행복한 나의 하루를 소중하게 바라보며

주말 사이 갑작스러운 친구와 선배의 부모님 부고 소식을 같이 접하였다. 선배의 어머님 상가는 먼 지방이어서 부득이 위로의 뜻을 전해드리고 친구의 아버님 빈소로 향하였다. 우연챦게 아파트 산책길에 가끔 뵙던 친구의 아버님이셨는데 2년여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신 후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다고 한다. 왜 내가 이 병에 걸렸을까? 하고 받아들이시기까지 너무 힘들어하셨다고 한다.


병이나 사고가 잘못된 생활습관이나 부주의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원인도 없이 혹인 타인의 부주의나 어떤 자연재해로 갑자스럽게 닥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착하게 남을 도우며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닥친 불행 앞에 어떤 이유를 들어 그 불행을 설명해야 할까?


‘고난은 변장한 축복’이라고 그 고난에도 감사하며 그 고난을 주신 신께 감사하며 신이 내게 주신 고난뒤에

다가 올 축복을 기다리기도 한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며 나중에 이 어려운 시기도 극복하고, 돌이켜보면 이 어려움으로 인해 나에게 다가온 복이 더 컸다 생각해 보기도 한다.


대학 때 종교와 관련된 교양수업이 있었다. ‘왜 이 세상에 악은 존재하고, 또 착한 이에게 불행은 닥치는가?’ ‘왜 세상에 고통과 악은 존재하는가?’라는 어려운 문제 앞에 지금 기억에 남는 대답은 ‘어둠이 있기에 밝음이 있고, 밤이 있어 새벽이 있다 ‘ 였다. 선문답 같기도 하였지만 ‘선이 존재하기 위하여 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세상의 악과 고통을 품고 살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선하게 살고 그 선한 영향력으로 밝음을 세상에 알려 조금이나마 어둠 속에서 밝음을 빛나게 하는 존재로 살아야겠다는 마음만 들었다. 그래서, 선인들이 자신들은 세상의 한 줄기 빛이 되고, 또 한 움큼의 소금이 되겠다며 조용히 살아가신 것인가 보다.



삶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우연으로 잡히는 영역이 있는 듯하다. 또 노력한다고 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갑자기 닥치는 불행도 감수해야 만 하는 순간들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부분 중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살아온 세월의 노력과 관계없이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갑작스러운 불행 앞에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어차피 도달하지 못한다면 시작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일까?

뛰다 걷다가 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하겠지 하는 믿음으로 묵묵히 길을 가는 편이 나은 것일까?

그냥 마음 가는 데로 몸 가는 데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좋은 것일까?

삶에 대한 이런저런 다른 생각들이 결국엔 각자의 인생관이자 가치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삶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의 길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단지, 부모님의 또 선생님의 또 다른 나이 드신 연장자의 삶을 보아왔을 뿐이다. 그분들의 삶이 나의 삶의 정답은 아니다.


그냥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라고 믿고 가야 하는 것일까?

난 그냥 그 정답을 '행복'이라는 단어에서 찾고 싶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행복하고 즐겁다면 그게 자신의 길의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각자의 영역이고 정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자녀에게 행복의 길이 되지 않는 것처럼, 타인의 삶을 평가할 이유도 또 그럴 능력도 우린 없다고 본다.



 산을 왜 오르는 것일까?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오르는 것이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오르는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삶은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다.

삶의 어떤 목적보다는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인간의 유한성과도 연관이 있다. 이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주제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육체는 유한하지만 죽기 전 '뇌'를 복제해 놓아 영원한 삶을 사는 것으로 그리는 영화가 있다. 어쩌면 삶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경험하고 그 경험의 기억들의 모음이 한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삶은 그 과정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두어야 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난 오늘 하루도 이렇게 이렇게 보냈다. 어떤 의미를 두는 삶이었다기보다는 내 앞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한 삶이었다.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내일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인생의 과정이 중요함을 이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을 모으는 것이 인생임을 되새겨 본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하루, 웃는 하루, 행복한 하루. 남은 오늘 하루와 다가올 하루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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