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키타카존 Sep 06. 2023

왜 안경 쓰기가 두려웠을까?

놓아주는 연습.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우리 반의 학생 수는 53명이었다. 많은 친구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뒷자리에 앉기라도 하면 칠판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안경을 쓴 이유이자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머리도 아픈 것 같았지만 곧 적응이 되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이 체육시간 뜀박질 할 때를 빼고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이 안경을 쓰고 있었고, 그냥 안경도 내 신체 일부가 되어 버렸다.


 은행에 들어가서 몇 해지나 강남 쪽 영업점으로 발령이 났다. 그 당시에는 지점에서 축구하는 것이 하나의 부서단합행사였다. 매년 열리는 노조체육행사에서도 축구대회는 빠지지 않았다. 그런 문화 속에 축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안경을 썼던 나는 고글을 맞추기 위해서 안경점으로 향했다. 스포츠용 고글을 맞추고 도수를 넣어 축구장을 뛰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뜀박질은 자신 있었다. 냅다 공을 향해 이리저리 뛰었다. 안경 대용 스포츠용 고글을 쓰고 말이다.


 큰 아이가 태어날 무렵 아내는 갑자기 이상한 이유를 들어 '라식' 수술을 하라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난 알았다. 아내도 라식 수술을 이미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기결혼인가?

그 이상한 이유는 '안경을 쓰고 있으면 아기가 아빠 얼굴을 잘 못 본다'는 것이었다. 라식이 무서웠지만 왠지 그 이상한 이유로 설득을 당했다. 그 이후 난 중학생 시절부터 20여 년을 써온 안경을 벗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눈이 좋았던 모양새로 그렇게 15년을 살았다.




몇 해전부터 조금씩 책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휴대가 편해서 조그마한 핸드폰을 썼는데 핸드폰 크기는 어느덧 커졌다.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버텼다. 불편해도 버텼다. 

왜 난 안경 쓰기가 두려웠을까?


인정하기 싫었다.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써야 되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컴퓨터 화면의 글씨체 크기를 키우고, 책을 멀리해서 보았다. 잘 안 보이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나이가 들었음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한계에 다다랐다. 조금만 책을 봐도 머리가 아팠다. 잘 안 보여서 눈을 찡그리다 보니 눈이 아파왔다. 이젠 내려놓아야 했다. 내가 아직도 젊다고 인정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인정해야 했다. 이젠 서서히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혼자 안과 가기를 주저주저하다, 둘째 아이가 근시가 와서 안과에 가야 해서 따라나서면서 덩달아 나도 시력검사를 했다. 둘째 아이는 아직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안경을 맞추지 않았다. 혼자 안경점을 가기를 또 주저했다. 그러나, 7월 한 달 동안 큰 프로젝트 건으로 문서와 씨름하다 이젠 안 되겠다 싶어 안경을 맞추었다.


난, 지금 안경을 쓰고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이젠 노안이 와서 일할 때 돋보기를 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안경을 껴야 하는 불편함이 책과 컴퓨터 글씨가 안 보이는 어려움을 이겼다.


이젠 하나둘씩 인정해야 하는 나이인가 보다. 내가 더 이상 팔팔하게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느껴야 하는 나이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내가 했던 일을 해야만 하는 나이이다.


사실 안경을 쓰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사실을 인정하면 말이다. 내 앞에 놓인 어떤 것도 인정하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건 더 이상 나에게 꼭 버텨야 하는 사실은 아닌 것이다. 붙잡으려고만 하지 말고 이젠 놓아줄 건 놓아주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잡고 있는 모든 것을 놓으면 좋으련만 사람이어서 잘 안된다. 놓아주는 연습도 필요한가 보다.


안경은 썼지만 난 내가 움켜쥔 걸 놓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이 내게 닥쳐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