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키타카존 Sep 20. 2023

화장실이 하나뿐인 집

오래된 아파트의 불편함을 대신하는 것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이후부터 살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지도 벌써 어느덧 8년이 되어간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큰 아이는 1학년 때 전학을 와 졸업을 하고 내 여동생이 다녔던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둘째 아이도 그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 내가 공부했던 그 교실에서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있다. 내가 초중고대학을 보낸 그곳에서 내 아이들이 자란다는 건 나름 흐뭇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초등학교를 '프로전학러'로 보내며 부산에서 입학을 해서 서울에서 두 곳을 더 다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다행히 그 이후 결혼하기 전까지 이 동네에서 살아온 건 어쩌면 그 이사 많이 다닌 어린 시절의 보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초등학교 6학년 반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걸 보면 '프로전학러'에겐 너무나 큰 보상인 셈이다. 며칠 후 그 옛날 졸업 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구가 미국에서 오랜만에 들어왔다고 다른 친구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뭐 명령이라기보다는 권유에 가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추억의 장소가 깃들인 곳이긴 하지만 그만큼 세월의 흔적이 녹아있는 아파트이다. 사실 요즘 들어 가장 큰 불편함 중에 하나는 화장실이다. 대부분의 요즘 아파트는 화장실이 2개이지만 우리 집은 오래된 아파트의 대명사처럼 화장실 하나뿐인 아파트이다. 다행히 아침시간은 모두들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서 화장실은 덜 붐빈다. 난 가장 먼저 일어나 모든 가족이 잠이 들어 있는 시간에 출근한다. 그 뒤로 중학생인 큰 딸이 준비를 하고 초등학생 둘째 딸이 준비를 마치고 등교를 한다. 그러나, 사실 가장 피크타임은 저녁 잠자리 들기 전이다. 모두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 매 저녁마다 화장실 사용순서를 정해야 한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저녁마다 누가 먼저 샤워를 할지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긴 사람이 원하는 데로 순서를 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나중에 샤워하는 것이다. 나중에 하는 것이 왜 좋은 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이 샤워하는 시간에 난 산책을 나간다. 내 차례를 산책을 하면서 보내는 셈이다.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오면 가족들의 샤워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내 차례가 오고 난 화장실을 쓴다. 보통 느긋하게 화장실 사용을 하기 위해서 난 마지막에 씻을 경우가 많다.


오늘은 산책을 나가는 대신 내 차례를 기다리며 글을 쓴다. 갑자기 하나뿐인 우리 집 화장실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건 왜일까? 사실 방 3개인 우리 집에 아이들이 하나씩 자기의 방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화장실 하나뿐인 불편함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면 각자의 공간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거실에 있는 커다란 책상에서 난 글을 쓰고 큰아이는 수학문제를, 둘째 아이는 만화책을 보고 있다.



방이야기가 나왔으니 옛날 내가 살던 집이 생각이 난다. 우리 가족은 다섯 식구였다. 그런데 방은 두 개였다. 여동생 둘이 있는 상황에서 각자의 방을 가지는 것은 엄두도 안 났다. 지방에서 근무하셔서 주말마다 집에 오시는 아버지 덕분에 공간의 여유가 약간은 있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내 방을 만들어 주신 기억이 난다. 베란다 한편에 장판을 깔고 책상을 놓았다. 독서실 같은 느낌이었다. 난 그 베란다 방에서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난방이 되지 않는 그 방에서 겨울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중학교 가을 중간고사 때 세계사 시험공부를 하던 기억은 뚜렷하다. 왜 그 과목만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화장실이 하나인 것만 빼고는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사는 집도 넓어졌고 리모델링을 새로 하여 나름 정돈된 장소에서 사는 셈이다. 북적거림이 줄어들고 그 옛날 어머니가 하셨던 부엌사용도 줄어들고 세탁 건조기가 있어서 빨래를 말리는 공간도 줄어들어서 집을 더 넓게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 새 아파트는 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 이젠 낡은 아파트가 되어 버렸다.


새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화장실 하나뿐인 이 낡은 아파트에서 나의 옛날 추억을 아이들과 공유하면서 아이들을 내 초등학교 후배로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아파트의 불편함은 빛바랜 추억으로 채우며 잘 살아가야겠다.


"아이들아 언제나 새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나이가 들어가면 너희도 알게 될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왜 안경 쓰기가 두려웠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