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의 일선에 서 있습니다.
매년 초 부서장 인사가 있다. 주위 분들의 응원 덕분으로 지점장이 되었다. 20년 이상의 은행생활을 하면서 책임자 승진, 부지점장 승진 그리고 세 번째이다. 매번 승진할 시기가 되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연말, 연초를 맞이하는데 그러기를 몇 해 반복했다. 몇 해 전 승진한 입사 동기들보다는 늦었지만, 아직 승진하지 못한 선배들도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열심히 한 노력도 있었을 수 있으나 정말 선배와 후배들의 응원이 컸다.
즐거움은 인사 발표 저녁 회식을 절정으로 해서 급격히 하락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서울에서 다시 공단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몇 해 전 3년여를 근무했던 곳이라 적응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서울의 화려한 빌딩 속에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나는 공단의 그 특유한 냄새와 환경이 처음엔 너무 낯설었다.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데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내 후각이 포기를 한 건지 아님 그 공단 냄새에 무디어진 건지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영업조직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단 영업점 지점장은 어쩌면 영업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한다. 누구를 만나야 할까? 어느 업체를 방문해야 할까? 등등
일단 오래된 명함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분들 그리고, 근황이 궁금했던 분들에게 승진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서, 약속을 하나둘씩 잡아 나간다.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회사 대표님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공단으로 다시 왔다고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말씀드린다. 중요한 건 그냥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시작이다. 어떤 목적으로 연락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오랜만에 전화드렸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분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I형 인간으로 E형의 영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약간은 선택적 성격변화는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MODE 전환이라고 할까? I형으로 지내다가 은행에 들어서면 약간의 E형 성격을 끄집어 내려 노력한다. 환경에 맞춘 약간의 변화이다. 사실 자꾸만 하다 보면 관성의 법칙처럼 탄력이 붙는다. 몇 년 만에 궁금했던 분들에게 전화를 건다. 잘 모르는 거래처 대표님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제공되는 몇 가지 정보만 가지고 업체 대표님에게 연락하여 미팅 약속을 잡는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제가 필요로 할 일이 있으시면 말씀 주십시오' 하고 미팅을 끝낸다. 내가 업무적으로 도와드릴 일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년 이상의 은행 경험과 지식이 이럴 때 필요한 것 같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면서 고민했던 그 오래전 순간이 기억난다. 연구원이 되지 않고서는 기업에 들어가면 제품을 팔아야 하는 기술영업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 경험을 통하여 영업에 필요한 부분들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은행원이 되면 우선 필요한 상품들을 팔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에 대한 지식들을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난 공학을 전공했으니 비록 마케팅등 영업관련된 지식은 부족하지만 기업들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는 데는 빠를 것이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결국은 각자의 제품이나 상품을 잘 파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논리이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렇게 나 스스로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했었다. 그때도 영업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사실 지점장이라는 자리는 '영업일선'의 의미도 있지만 후배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크다. 아직 시작하는 지점장으로서 그 부분은 또 새로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것저것 할 일도 많아지고 책임감도 커지지만 그래도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많은 주위 분들을 위해서 또 나 자신을 위해서 오늘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또 출근하고 미팅을 하러 나간다.
스스로를 응원하며 오늘도 힘찬 하루를 보낸다.
'파이팅 J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