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난 'E'형이 필요한 'I' 형이다.
은행을 필요에 의해 직접 방문하시는 고객분들도 있으시지만, 고객의 필요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하여 직접 사업장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직업상 외향적으로 살아가려고 하곤 있지만 타고난 성향은 어쩔 수 없기에 특히 처음 고객을 만나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고객의 요청에 의한 미팅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알고자 직접 방문하는 상담은 무척 힘들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내가 못 해내는 경우도 있고, 내가 원하는 바는 고객이 필요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그렇게 만나다 보면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를 위해서 난 오늘도 쑥스럽지만 고객을 만나러 간다.
며칠 전 한 고객분을 만나러 갔다. 왠지 그날은 갑자기 이런 기분이 들었다.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사실 그리 외향적이지는 않아서 살갑게 누군가에게 친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임을 알기에 최대한 논리적이고 확실한 이미지로 상담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예, 아니오의 딱 떨어지는 답이나 이건 되고 이건 안되고 식으로 이야기를 드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차별화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날은 첫 번째 상담은 완료해서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협의차 전화를 드린 때였다. 고객님은 갑자기 밥이나 먹자고 하신다. 마침 점심 약속이 없었기에 그렇게 하자고 하며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나섰다.
그분의 첫인상이 좀 강해 보여서 나도 '강한 인상'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일까?
그렇게 마음속으로 무장을 하면서 나가서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그분의 말씀에 난 당황했다.
'지점장님을 뵈니 착실하게 공부 잘해서 졸업하고 은행만 다니 신 분 같네요"
칭찬인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인상'을 보여주자고 다짐하고 만난 고객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역시 성격이나 성향은 숨기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자'
그냥 내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으로 상담하고 필요한 부분을 해결해 드리기로 했다.
자신의 성향대로 성격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성격대로라면 사실 공대를 졸업한 나로서는 연구소에서 조용히 실험하면서 결과를 내는 직업을 선택하는 게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연구원은 흥미가 없었다.
은행원으로서의 시작은 힘들기는 했지만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뭐, 직업은 그런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직장인이라고 하면 회사가 원하는 부분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해내야만 할 때가 많다. 힘에 부칠 때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소명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 때 성당 교사를 할 때는 '사제'가 되는 것도 좋아 보인다고 주위에서 이야기 한 기억도 난다. 그러나, 그냥 얌전히 말 잘 듣는 교사여서 그런 것 같다. 신부님이 된다고 해도 지금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현재의 모습을 보면 후회가 남는 법이다.
이런저런 고객 분들을 만나다 보면 처음 뵙는 분과도 때로는 이야기하며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다. 또 회사에서 동료들과도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즐거울 때도 있다. 물론 힘든 일 어려운 일도 많지만 잘 해결하고 성공했을 때의 기쁨도 있다.
내 성격이나 성향을 탓하고, 어렵다 하면 힘든 일만 생기는 것 같다. 내 본연의 모습으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겠다. 20년 넘게 해온 직업이지만 아직도 어려운 일에 맞닥뜨릴 때가 있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잘 해결해 나가야겠다.
난 오늘도 이렇게 고객을 만나러 사무실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