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쓴 지 꽤 되었다. 이건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한 다음 "나는 왜 썼는가 (혹은 왜 쓰는가)"라는 주제 아래에 쓸 것 같다. 사실 나는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을 거의 생각의 흐름처럼 써내려 간 뒤, 맞춤법 검사만 하고 올린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때 했던 블로그를 했던 사람으로서 거기서 나온 (안 좋은) 습관인 것 같다. 정성스레 쓰고 몇 번을 수정한 뒤 포스트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저 일상의 기록 용도로 쓰는 것 같다. 물론 브런치 플랫폼은 전자의 사람들을 더 많이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누군가 나의 포스트들을 읽었을 때 그냥 또 하나의 "word vomit" (영어에는 '단어의 구토'이런 표현이 있는데 한국어로는 있는지 모르겠다)이라고 느낀다면 조금 미안한 느낌도 든다.
그간 읽었던 책들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책들을 읽게 된 건 실리콘밸리의 "맥북 (i.e., 맥주와 북)"이라는 북클럽 덕분이다). 사실 몇몇 책들을 세세하게 리뷰하고 싶을 정도로 재밌었는데, 너무 포스팅이 밀려서 이렇게 짧게 기록만 남기게 되어 아쉽다.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맥북 점수 2.92)
<고래>, 천명관 (맥북 점수 3.88)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맥북 점수 4.00)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맥북 점수 3.20)
<노름꾼>, 표도르 도스토예브스키 (맥북 점수 3.33)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맥북 점수 3.30)
<쾌락>, 에피쿠로스 (맥북점수 3.07 - 이건 책만 읽고 참여하진 못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맥북 점수 3.25 - 이것도 책만 읽고 참여하진 못했다)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맥북점수 3.75)
그 사이 오펜하이머 영화도 봤다. MIT/하버드 공대에서 박사를 하셨던, 혹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랑 같이 보게 되었다는 점이 나 자신에게는 꽤나 멋진 일이었던 것 같다.
따로 시간 내서 읽었던 책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가볍게 안는다>, 심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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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나열한 책들 중 누군가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고래>인 것 같다. 상당히 야하지만 그만큼 재미가 보장된 책인 데다, 필체도 전에 접해보지 못한 필체라 책을 읽는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었던 책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무엇인가?라고 이야기를 나눴던 맥북에서 나는 그랬다.
춘희가 홀로 벽돌을 굽고 있는 모습들에서, 나는 작가가 이렇게 얘기하는 듯했다고. "이게 바로 인생이야 - "
"정답은 없어."
금복이의 인생도, 춘희의 인생도, 칼자국의 인생도, 약장수의 인생도 - 다 그들이 살아가는 인생이며 짧든 길든, 화려했든 소소했든, 모두 각자 사는 대로, 혹은 살 수 있는 대로 살았던 인생이다.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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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다 보면 "과연 나는 결혼이라는 체제가 맞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데, 중학교 때부터 오스카 와일드를 좋아하고 시 쓰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감성적인 연애, 낭만이 있는 연애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엄마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런데... 만약 결혼하지 못하는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준비해 놓으려고 한다.
몇 달 전, 그래도 아이는 꼭 가지고 싶다고 얘기하는 나에게 부모님이 물었다. 너는 왜 아이가 갖고 싶어?
"엄마아빠가 우리를 키우면서 너무 행복해하는 걸 봤고, 나도 그런 엄마아빠 밑에서 자라는 게 너무 행복해서. 그래서 그런 행복을 나도 가지고 싶고, 내 아이에게도 그런 행복을 맛보게 하고 싶어서."
정답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최근 테니스 모임에서 했던 대화 중,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애는 사랑하려고 가지는 거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을 다 줄 대상이 필요해서 갖는 거라고 한다. 그 말이 아직까지도 꽤 자주 생각난다.
여태의 경험으로 보면, 내가 하는 사랑의 형태 또한 "주는" 형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줄 때 벅차오른다. 물론, 상대방이 나의 사소한 배려도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줄 때 서로 "잘 맞는다"라고 느끼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로, 스쳐 지나가는 눈빛, 말, 배려 그 모든 게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캐치하고 그것에 받은 감동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미래의 연애에도 따뜻함/차가움에 어느 정도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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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근황에 대해 조금 쓰자면, 이젠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그리울 것 같은 게 무엇일 것 같아?
단골질문이다.
물론, 아침 일찍 일어나 맑은 공기 마시면서 카페로 나와서 이렇게 키보드 두드리는 것도 그리울 수 있다. 뉴욕에 마지막으로 살던 동네, 그리고 여기 샌프란에서도 아침에 이렇게 카페에 나올 때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굉장히 여유롭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리울 것 같은 건 - 내 주위의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아름답다는 것. 그 동네의 특징들이 있다는 것. 한국에선 가끔 어떤 길거리나 동네들이 인위적으로 "미국 스럽게" 혹은 "유럽 스럽게" 꾸며져 유일한 목적이 '핫플'이 되어 인스타에 많이 오르는 게 목적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미국이라고 이런 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is it instagrammable"이라는 표현도 이 현상을 압축해 놓은 표현이고. 하지만 미국은 뭔가 "지나치게 인위적인"것들을 싫어하는, 자연스러운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유학하다 한국에 들어간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은 이런 인위적인 것들에서 "피로도"가 쌓이는 것을 조심해야 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역시나 가장 그리울 것은 맥북, 베이 오락실에서의 다양한 아우팅과 보드게임, 그리고 교회 사람들 인 것 같다. 직장 동료들은 사실 노티스를 주면서 "우리가 이렇게 친했었나..?" 하고 느끼게 된 케이스인데, 브런치가 최근 주제별로 작가들을 나누는 걸 보며 이건 따로 직장생활 이야기를 연재하며 써야겠다. (여기서 또 스스로에게 할 질문은,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 구별되고 싶은가...이다.)
지난 맥북 모임에서 맥북이 참 그리울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며, 맥북in서울 브랜치를 만들겠다고 했다. 물론 요즘 트레바리와 비슷한 형태의 모임들이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서울에서 생활도 잘 적응할 수 있길 바라며 이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