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에 대한 정의
몇 주 전, 한 독서모임을 참석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을 가져와, 그 책을 소개하며 다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 하나를 말하는 모임이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 꽤나 먼 곳에서 진행된 모임이었기에 이 독서모임에 다시 나가지 않는 한, 아마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확률은 굉장히 낮을 것 같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가지고 온 어느 분이 그랬다. 본인은 앞으로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만 남기기로 했다고. 나쁜 사람들은 차단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셨다.
내가 물었다. "나쁜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이 굉장히 명확했다.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요."
분명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겠지. 공감이 가는 답이었다. 정말 좋은 기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나도 말했다.
엄청난 지혜를 쌓을 정도로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짧게 살아본 결과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대부분 고의적으로 누군가를 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다. 혹은, 고의적인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나중엔 그럴 의도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정말 그때 자신의 마음을 합리화하거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선한'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선한 선택들을 하지 않아도 "이제부터라도" 선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선하게 살 수 있을 삶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한다. 다시 선/악 중 고를 순간에 악을 선택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상황에서 확실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혹은 사람에 관한 선과 악의 기준은 그 사람의 의도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그러면 무엇으로 해야 할까?
적어도 그 독서모임의 그분은, 책임감을 기준을 내리기로 하셨다. 기준이라는 것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면, 다시 생각해도 좋은 기준인 것 같다. 나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혹은, 의도적으로 약속에 늦거나, 의도적으로 배려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같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내가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그런 사람들까지 다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가끔 해본다. 폭넓게 사람을 사귀라는 아빠의 말도 떠오른다.
내가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들과, 멀리 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또한, 가까이하고 싶어도 결국 멀리했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내가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