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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에세이]_함께 쓰는 기쁨

by 민트아트



매주 일요일 새벽 5시 50분,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남편이 깨지 않도록 알람을 바로 끄고 일어나 조용히 책상에 놓인 스탠드와 컴퓨터를 동시에 켠다. 세수하고 물 마시고 자리에 앉으면 만반의 준비 끝. 줌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이렇게 매주 만난다. 화장기 없는 조금은 부은 얼굴이지만 선생님들의 얼굴은 오늘도 맑음이다. 글이 쓰고 싶어서 달콤한 주말 늦잠을 포기할 수 있는 반짝반짝 빛나는 그 열정이 모두를 예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날 주어진 주제에 대해 새소리가 흐르는 배경음악을 들으며 30분 동안 쓴다. 어떤 날은 술술 써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고민하느라 몇 문장밖에 못 쓸 때도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쓴 글을 서로 나누며 우리는 맑게 웃는다. 마무리는 각자의 숙제. 선데이 에세이라 꼭 일요일에 발행해야 한다는 나의 고집으로 새로운 일주일을 하나의 글을 완성하며 시작한다. 일요일을 시작으로 볼 것인가 마무리로 볼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달력에도 제일 앞에 있으므로 나에게 에세이 쓰기는 매주의 첫출발 의식이다. 이렇게 에필로그라는 소모임에 들어가 주 1회 온라인 모임을 하고, 매일 읽은 책을 필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되는 시간인데 우리의 글은 과연 어디쯤 와있을까?


'에필로그'는 소설, 연극 등 작품의 끝에 추가되는 부분으로 결말 이후의 이야기나 작가의 마지막 말을 담고 있다. 글쓰기 모임 이름으로는 '프롤로그'가 더 낫지 않겠냐고 속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팀장님으로부터 작명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알았다. 아무나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에필로그는 '에세이와 필사, 로그(기록)'를 합친 이름이라는 의미를 듣고 이보다 더 안성맞춤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모임의 첫 숙제는 개인 글쓰기 플랫폼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매일 필사한 글과 에세이를 올릴 카테고리를 추가로 만들고 '00 이야기'라는 공통된 명칭으로 블로그의 통일성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브런치 스토리에도 선데이 에세이 매거진 자리를 마련했다. 온라인 공간이었지만 나의 글쓰기 장소였으므로 소중한 이곳이 집 안 청소를 한 것처럼 환해졌다. 본격적인 모임 전 첫 미션은 '나의 글쓰기 역사와 앞으로의 글쓰기 목표'를 쓰는 것이었다. '역사'라는 말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글을 쓰며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했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함께 시작된 매일 필사하는 삶.


중고등학교 때 휘갈기며 쓴 나만의 독서록, 2017년에서 20년까지 썼던 본깨적 노트 이후 제대로 된 필사, 필사다운 필사는 처음이었다. 필사 예찬론자들에게 장점을 많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하기 힘들었던 필사를 처음에는 숙제처럼 해냈었다. 필사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사한 글을 바탕으로 생각을 함께 적는 글쓰기 훈련이었다. 우울증 해소 차원에서 시작된 매일 글쓰기가 1년이 넘은 때였기에 숙제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블로그 화면이 필사로만 채워지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지겨웠었다. 그렇다고 1일 2 포스팅을 할 여력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깨달았다. 내가 온라인에 글을 쓰는 이유는 타인이 원하는 화려한 방문처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필사하며 생각을 덧붙여 쓰는 글쓰기 훈련은 선데이 에세이 쓰기 활동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필사를 통해 손끝으로, 마음으로 직접 전해졌던 좋은 표현들이 조금씩 체화되기 시작했고, 평소 내 글을 읽으며 평범하다고 생각되었던 표현이 조금씩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이런 표현을 써볼까. 지난번 그 에세이 작가 표현이 좋았는데, 지난번 그 선생님 표현이 너무 좋았는데...'하며 여러 가지 문체나 표현을 따라 써보는 것은 글쓰기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다양한 문체의 습득은 마치 밋밋했던 식탁에 예쁜 꽃병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차려진 한 끼 식사를 조금 더 맛있게, 멋있게 만들어 주었다. 필사하는 책의 글도, 함께 쓰는 선생님들의 글도 모두가 나의 소중한 스승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한 에세이 쓰기 주제는 사소한 것으로 글쓰기, 미래, 질투심, 봄, 키워드, 어린이, 장소, 편지, 즐거운 학교, 사진까지 폭넓게 주어졌다. 똑같은 주제에 대해 선생님들의 완성된 글을 읽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와 표현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모임이 즐거운 것은 지적질을 하는 합평 모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글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칭찬하는 것은 우리에게 글을 더 쓰고 싶게 만드는 마법이 시간이 된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업 작가처럼 쓴다는 것은 처음부터 다가가기 힘든 영역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응원한다. 환대의 광장에 나와 따뜻한 피드백을 받으며 조금씩 발전하는 선생님들의 글이 그 증거이다. 골방에 들어앉아 혼자 글을 쓰며 고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함께 글쓰기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요일이 기다려지고, 우리들의 글이 모여 책이 만들어지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이 애틋하고 소중한 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윤미영 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뜻이 있어도 이끄는 리더가 없으면 함께 하지 못했을 우리의 소중한 에필로그. 아름다운 글쓰기로 우리의 에필로그를 직접 쓸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여,

에필로그 소모임을 이야기하면서 교사성장학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성장학교는 성장하고 싶은 전국의 초중등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학교이다. 회원수가 200명이기에 두세 번의 오프라인 모임으로 모든 회원과 유대감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개설된 소모임에 들어가 활동하고, 성장학교 각 운영팀에서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가면 된다. 과연 나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심하지 말고. 교사성장학교는 누군가 나를 성장시켜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도전하며 함께 도전하는 분들과의 연대 속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곳이다.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에필로그 소모임을 선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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